그녀가 완도군청에서 1인 시위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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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완도군청에서 1인 시위 한 이유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0.04.0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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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그녀는 완도군청사 처마 아래에서 피켓 2개를 목에 걸고 이틀째 일인 시위를 하고 있다. 8시부터 9시까지 공무원들 출근시간에 검정 상복을 입고 검정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은 정옥 씨(고금 항동리 주민)다. 피켓에는 “故 정태연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 “고금면 돈사 재판정에 서야 할 사람은 정태연 어르신이 아니라, 완도군수와 돈사 허가 담당 공무원입니다”라고 씌여 있다. 그녀는 무슨 까닭으로 1인 시위를 하고 있을까?

서울 출신인 그녀는 결혼 후 남편의 고향인 고금도 항동으로 귀어했다. 올해가 8년차. 아들 하나를 둔 그들 부부는 그야말로 소처럼 일만 했다. 마을회의에 참석해 본 적도 없이.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와 양식한 굴과 매생이를 대도시 소비자들과 직거래했다. 그 사이 아들은 쑥쑥 자랐고 새 집도 지었다. 고금도 청정바다의 싱싱한 수산물을 소비해주는 도시 고객들을 보며 느낀 보람으로 겨울 바람과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마을의 평화가 깨진 건 지난 2018년 여름이었다. 그해 4월, 척찬리에 돈사 허가가 났고, 주민들은 7월 말쯤에야 그 사실을 처음 접했다. 돈사 예정지는 마을 앞 간척지 건너편으로 항동의 코앞이다. 그 소식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는 그때부터 마을회의에 참석했고,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돈사 신축을 반대하는 고금도 주민들이 8월 13일, 군청 주차장에서 허가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녀는 거기에서 마이크를 잡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해 10월, 신우철 군수는 돈사 허가를 취소했다.

군수의 허가 취소 사유는, 사업주가 제출한 신청서에 첨부된 주민 동의서에 기재된 주민들 중 일부의 서명이 위조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업주는 바로 완도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이듬해 4월(1심)과 11월(2심), 완도군의 연이은 패소를 시작으로 급기야 올해 3월30일 대법원에서도 완도군의 항소는 최종 기각됐다.

최초의 돈사허가만큼이나 광주지방법원 1심 재판 과정과 결과도 주민들 모르게 조용히 진행됐다. 광주고등법원 2심 항소심에서 그녀는 사업주와 완도군 사이에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결국 재판은 주민동의서 허위 제출에 대한 진위 공방에 국한된 채 주변 환경 변화로 인한 주민들의 생존권이나 피해 등 내용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돈사 신축으로 피해를 보는 건 주민들이지만 이번 패소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법원 판결이 있던 날(3월30일), 항동 마을 한 주민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완도군청에서 이틀 간 1인 시위를 했던 그녀의 이유를 들어보자.



Q 이틀째 시위를 하는데 춥지 않나?

어업인에게는 이 정도는 추위도 아니다. 정작 추운 건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과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다.


Q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월요일(3월30일) 판결이 있었고 완도군의 상고가 기각됐다.


Q 정태연 어르신은 어떤 분인가?

사업주가 군청에 제출한 돈사 신청서에 첨부된 주민 동의서를 입수했는데, 말이 동의서지 그냥 해남 지역 신축돈사 참관 확인서였다. 화재 때문에 신축한 돼지 한 마리 없는 돈사에 고금도 돈사 예정지 4개 마을 이장들과 노인 2명 등 참관자의 서명이 포함된 확인서였다. 거기에 정태연 어르신의 서명도 있었다. 어르신은 자신이 한 서명이 아니라고 했다. 또 한 분(손OO)이 그랬다. 그래서 그분들을 모시고 허위문서 작성으로 사업주를 상대로 한 고소장을 완도경찰서에 제출했다.


Q 고소 취하한 걸로 들었는데.

손OO 어르신이 먼저 취하했고, 사업주 측이 정태연 어르신의 가족은 물론, 강원도 사는 조카에게까지 전화해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 ‘징역살도록 하겠다’고 협박을 했다. 결국 사업주 측에서 정태연 어르신을 경찰서로 모시고 가 지켜서서 고소를 취하하게 했다.


Q 재판 과정에도 참여했는가?

정태연 어르신은 광주고등법원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시골에서 나고 80 평생 사셨던 노인이 사업주에게 협박당하고 또 생전 처음으로 법정에 섰으니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겠는가? 참관 확인서의 서명은 자신이 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또 사업주가 참관 당시 찍었던 사진 속 얼굴도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전부 아니라고 진술했다. 아마도 본인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를 지켜보던 방청객들이 다 같이 한숨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Q 그 어르신은 이후에 어떻게 됐는가?

재판에 참석한 후부터 치매 증세가 악화돼 자택에서 요양보호를 받다가 결국 요양원에 입소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이 있던 지난 3월30일 돌아가셨다.


Q 이렇게 시위하는 이유는?

주민동의서에 사인을 도용당하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섰던 정태연 어르신이 대법원 판결이 있던 같은 날 돌아가셨다. 어르신은 고소와 재판 과정에서 충격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죄송스러웠다.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그분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Q 그동안 소송 과정에서 느낀 점은?

이번 재판은 사업주가 완도군을 상대로 허가취소를 취소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허가를 취소한 완도군은 그 이유가 사업주가 제출한 서류가 허위로 작성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사 신축이라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충분히 알리지도 않았고 또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전혀 없었는데도 재판의 쟁점을 오로지 신청 서류의 진위 공방에 제한된 재판이었다. 완도군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행정과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적 없다. 


Q 돈사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돈사가 항동 마을 앞 간척지에 신축된다. 오폐수가 농수로를 통해 담수호에 저장될 것이고, 이것이 바다로 방류되면 우리 어업인의 삶의 터전인 바다가 오염되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것이다. 물고기 잡고, 굴, 매생이 양식하는 곳에 돈사 허가를 하는 것 자체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알아갈수록,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Q 재판에도 참여했는가?

2심 재판부터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이다. 우리 지역에서 아무런 재력도, 영향력도 없는, 아이의 엄마이고 주부인 내가 앞으로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서 돈사만은 막을 것이다.


Q 이번 1인 시위에 대한 주변의 시선은?

겨울 추위보다 더 매섭다. 더 이상 고금도 주민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이 싫다.


Q 완도군이 또다른 소송을 제기할 거라는데?

이제까지 완도군 행정의 과실이 중대함에도 주민들 그 누구도 완도군과 공무원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안 한다. 완도군을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 앞으로 소송에 승산이 있고 또 의지가 적극적이라면 지켜보고 도울 것이다. 그동안 경험이나 자료로 도울 수 있다.



그녀는 4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검은 상복을 입고 완도군청사 처마 밑에서 추위에 떨며 2시간 동안 침묵 시위를 했다. 이튿날 8시40분쯤 신우철 군수가 출근 중에 잠시 그녀를 만났다. 신문사 한 기자가 그녀의 말에 귀를 열었을 뿐이고, 800여 전체 공직자들 중 오직 소송 관련 담당만이 속이 타는 모양이었다. 첫날 시위를 마치고 집에서 굴을 까고 있던 그녀를 찾은 건 마을 이장을 대동한 고금면장과 총무계장이었다. “시위하는 뜻이 전달됐으니 이제 멈추라”고. 그들의 말처럼 그녀가 시위하는 뜻이 과연 세상에 충분히 전달되었을까? 그래서 앞으로 그녀가 돈사 걱정없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시위하던 그녀의 등 뒤 전광판에 완도군정을 요약한 문구들이 빛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미래성장 해양치유 → 사람우선 포용복지 → 지속가능 지역경제 → 생태중심 문화관광 → 가치보존 청정환경”
 

지난 2018년 8월13일 완도군청 주차장에서 열렸던 고금면돈사반대추진위원회 집회에서 정옥 씨가 돈사 반대를 주장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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