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수고생 서울대 가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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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고생 서울대 가기인가?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2.07.17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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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당시 완도수산고등학교 전경. "창의적인 경양인 육성"이 교육목표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경양(耕洋)이란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양이란 바다(洋)를 갈고 일군다(耕)는 뜻입니다. 1951년에 개교하여 올해로 9,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새로운 '땅끝'에 위치한 완도수산고 학생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완도수고 또는 수고(水高)로 불립니다. 그런데 지금 수고라는 이름은 그리 명예로운 호칭은 아닙니다. 요즘 수고에 무슨 일이 있냐구요?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겠기에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요즘 '해신'이란 드라마로 이곳 완도는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하루 평균 몇 천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합니다. 천 년 전 청해진의 영광 이후 완도는 반역의 땅으로, 그래서 죄인들의 유배지로 인기(?)를 누렸고, 이제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완도가 경제적으로 부를 누렸던 한 때는 있었습니다. 김과 미역을 수출하여 개도 천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니 말입니다. 60~70년대의 김과 미역은 이제 광어와 돔과 전복, 톳 등의 어폐조류 양식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완도는 육지와는 달리 바다가 논이고 밭이며 공장입니다. 완도 사람들에게 바다를 일구며(耕洋) 사는 것은 결코 낭만이나 사치가 아니며, 생존이며 생활입니다.

천 년 전 청해진의 영광과 60~70년대 완도 번영의 키워드는 바다였습니다. 따라서 청해진의 후예도, 완도 번영의 주역도 묵묵히 바다를 터전으로 삼고 일구며 살아온 '수고생'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고개 숙인 수고생"일 뿐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모교를 사랑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자식들만큼은 수고가 아닌 타지의 '명문고'로 보내기 위해서 오래 전에 보따리를 쌌고 자신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 자포자기의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 결과 아무도 수고의 진짜 존재와 가치를 모릅니다.

수고는 잊혀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는 그 껄끄러운 '수고문제'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완도의 문제는 곧 교육의 문제이며 완도 교육과 경제의 한 복판에 완도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에 대한 오랜 푸대접과 홀대와 무시는 끝나야 합니다. 완도의 경제와 교육문제는 완도수고의 문제이며, 수고의 빠른 정상화만이 완도의 정상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때늦은 저의 확신입니다.

그래서 제가 걸고 다니는 것이 '수고생 서울대 가기'라는 간판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수고생이 어떻게 서울대를 가느냐, 말도 안된다. 영어, 수학 잘해야 좋은 학교 가고, 좋은 대학 나와야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서 하위권 학생들만이 가는 수고에서 서울대를 가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입니다. 깊은 패배주의의 산물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그 것 자체가 만들어낼 결과를 상상해 본다면 언제가 되었건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라고 얘기합니다.

서울대는 비록 세계 100위 안에 들지도 못하는 학교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최고 학부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권력은 서울대와 그 대학 출신 동문들의 차지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비정상적인 학벌위주의 현실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서울대 공화국'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폐지가 한국의 교육을 살린다고까지 합니다. 현 정부가 수도 서울의 비대한 권력을 행정수도 이전을 통해 분산하려고 했던 것처럼, 멀리 본다면 서울대로 집중된 권력도 지방으로 분산 이전되어야 합니다. 강원도 출신의 모 의원이 서울대 농대를 자신의 지역구로 유치하려고 했던 것을 보면 변화의 조짐도 보입니다. 우리 완도에는 해양관련 학과나 단과대학이 올 수도 있겠지요. 앞으로 권력과 출세의 상징인 서울대는 잘난 사람들만 가는 학교가 아니라 누구나 갈 수 있는 학교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최고'라는 서울대의 상징적 의미는 이제와 앞으로도 여전합니다. 거기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개인과 집안의 영광이자 지역 전체의 경사입니다. 바로 이것이 수고생이 서울대를 가야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완도 번영의 주역이었고 미래 완도의 희망인 수고 동문과 수고생들이 어깨를 펴고 자부심을 되찾을 수 있는 최초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수고 동문 전체가 모여 춤추고 노래할 것입니다.

각자 지갑을 열어 서울대 간 수고생에게 장학금과 격려금을 지급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장학재단을 만들어 후학들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완도 전체가 새롭게 살아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학생과 부모와 학교 당국은 우선 실력을 키워나가야겠지요. 또한 이 지역의 정관계 지도자들은 서울대 총장이나 교육부 장관 또는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서라도 입학 허락을 받아내야 할 것입니다.

천 년 전 청해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들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 해결의 열쇠를 남으로부터 얻고자 하고, 남을 배우고 닮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 완도의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우리 안에서 해결의 열쇠를 찾으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완도는 언제나 육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청해진의 무대는 바다이며, 그 바다를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명예와 자부심은 이제 복권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경양(耕洋)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완도수고야말로 21세기 완도 르네상스의 장보고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이렇게 노래합니다.

“수고생,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2006년 4월 7일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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