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병 팔려고 택시를 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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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병 팔려고 택시를 탈까요?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2.07.24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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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과외가 직업인 제가 빈병을 모으게 된 것이 지난 12월부터입니다. 아이들과 공부하는 밤 시간 외에 매일 주변에서 30개 정도를 배낭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양이 점차 많아지자 작은 카트를 구해 메고 끌었습니다. 왼쪽 어깨 인대가 끊어진 줄도 모르고. 지금 빈병 3,000여개 정도가 제가 사는 3층 건물 옥상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건물 주인은 치워달라고 합니다. 이제 1층으로 내리는 일도 고역입니다. 그 후 버려진 리어카를 고쳐 끌게 되면서는 그때마다 마트나 주류회사에 직접 팔았습니다.

빈병을 하나씩 배낭이나 리어카에 담는 일, 그거 엄청 더러운 일입니다. 모텔 뒷골목, 먹고 난 야식 안주 속에서 소주병 하나를 꺼낼 때의 찝찝한 기분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옆을 지나는 사람이 그 장면을 본다면요? 졸라 쪽 팔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일이 좋은 걸요. 이 일을 하면서 중독에 가까운 술을 끊었고, 길을 걸으면서 보고 만나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면 이 빈병 줍기가 얼마나 고맙고 은혜로운 일입니까?

그런데 줍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빈병을 파는 일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술값에 병 값은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판 회사나 마트는 빈병을 가져오면 그 가격대로 환불해 주어야 합니다. 병 표면에 표기된 대로 통상 맥주병은 50원이고 소주병과 음료수병은 40원입니다. 낭비되는 자원을 재활용하고 환경을 보호할 목적으로 이를 환경법으로 일원화했고, 어길 경우 300만원의 과태료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건강의 섬,” 완도의 사정을 한번 봅시다. A주류에 가져갔더니 10원씩 쌉니다. 맥주병은 40원에, 소주병은 30원에 받습니다. B마트에 갔더니 맥주병과 소주병을 똑같이 30원에 환불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C마트에 갔더니 공히 40원입니다. C마트가 그래도 조건이 제일 좋습니다. 거기로 매일 갔더니 다른 데로 가랍니다. 이유는 빈병을 담을 상자가 없다나?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완도군청 환경보호과에 문의했습니다. 담당은 지도하겠답니다. 그 후 A주류에 갔을 때, 평소에는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며 격려해주던 배가 나온 간부 한 분이 직접 나와서 공문을 보여주면서(환경부 발행 소책자), 수레 이상의 빈병을 가져올 경우 전문수집소로 가져가라며 “더 이상 못 받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전문수집소는 목포에 있다고 친절히 가르쳐 줍디다. 시종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더군요. 행정지도를 잘 받은 덕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남도청 환경 담당에게 물었더니, 그 내용은 권장사항일 뿐이고,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조치하겠으니 전화해 달랍니다. 그 후 B마트에 갔더니 40원으로 10원이 올랐습니다. 이것 또한 행정지도의 약발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현금이 아닌 현물로 가져가라고 합니다. 빈 상자가 없어서 못 받겠다, 수레에 실린 다량의 빈병은 안 받는다, 돈은 안 되고 현물로 가져가라니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게 되는 좁디 좁은 지역 사회에서 고발이라도 해서 벌금 물게 할까요? 빈병 줍기를 중단한 이유입니다.

얼마 전 삼성그룹이 그동안 탈세, 편법증여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지자 8,000억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친절한 우리의 대통령은 공돈이나 생긴 듯이 그 돈의 용처를 가이드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쌓은 부의 아주 약간을 국가에 헌납해서 죄를 원샷에 탕감한다? 강도, 도둑질한 돈을 감사헌금으로 바치고 죄를 용서받아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도둑질을 시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그래서 삼성의 8,000억은 그리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늙고 병든 노인들이 주변에서 힘들게 모은 빈병들을 제값으로 환불해 주는 것이 오히려 8,000억보다 소중한 우리 사회와 이웃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라고 생각합니다. 준법이 곧 선행이고 애국인 까닭입니다. 요즘 거리에 넘치는 흔해빠진 애국 말입니다.

수레로 가져가든, 트럭으로 가져가든 빈병을 제값대로 환불해 주어야 옳습니다. 그건 조건의 문제나 선택의 사항이 아니라 의무조항입니다. 왜냐면 그들이 그렇게 팔아 부를 누렸기 때문입니다.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지(noblesse oblige)를 들먹일 필요도 없습니다. 넉 달간 모은 빈병 8,000개, 대략 30만원 정도 됩니다. 더럽게 모은 깨끗한 돈, 자가용 승용차나 아파트를 살 수 있는 큰 돈은 아니지만, 점심 굶는 우리 아이들, 굶어가는 북한의 어린이들,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살리는 생명의 돈입니다. 그 성스러운 돈을 위해 제발 더러운 빈병 좀 깨끗하게 환불해주는 “건강의 섬, 완도”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병을 팔아 얼마나 된다고 이 돈을 위해 리어카 대신 택시에 빈병을 실을 수는 없지 않은가요?(2006년 4월 7일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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