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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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공동체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2.07.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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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바다는 사리(10물)다. 제법 물이 많이 빠졌다. 서둘러 중리로 달렸다. 기다렸던 그물이 드러났다. 바다와 논의 경계인 둑에는 늙은 소가 풀을 뜯었다. 갯벌 위로 파란 깃발 하나 간짓대(장대) 위에 펄럭인다. 무슨 상징인지 동네 사람만이 알 것이다.

섬마다 동네마다 대동소이하겠지만, 바다를 물과 뻘의 영역으로 나누자면, 물은 남자들(어촌계)의 공간이고 뻘은 여자들(부녀회)의 영역이다. 따라서 관리하는 책임이 다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금도에선 거의 매일 당번을 정해놓고 한 집에서 한 사람씩 빨간 깃발을 들고 개(갯벌)를 지켰다. 다음 날 그 깃발은 옆집으로 건네진다. 일손 하나가 귀하던 시절이니 그 일은 막둥이였던 내 차지였다. 내가 하는 일은 허락없이 누가 갯벌에 들어가 함부로 갯일을 하는지 살피는 일이었다. 갯벌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그래서 '개매기'(개막이)다. 따지자면 갯벌의 보안관이다.

반대로 날을 정해 갯벌에 들어가도록 하는 날은 '개튼다'고 한다. 한 집에서 한 사람씩 나와 바지락, 굴(석화), 꼬막 등을 채취한다. 당연히 '선수'들이 출전한다. 울 엄마는 갯것 못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났다. 대신 큰누나가 잘했기 때문에 가끔 순천에서 원정도 온다. 개트는 날은 오랜 관행에 따라 날이 정해져 있으나 부녀회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하루 전날 마을 스피커를 통해 예고된다. 전원일기에서 '일용이'가(오늘의 장관 용식이였나?) 하듯이.

여자들 개인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물이 들어(밀물) 일이 끝나면 부녀회장은 채취한 갯것에서 일정 정도를 거둔다. 일종의 세금이고 보험으로 이렇게 모인 돈이 부녀회 공금(공동자금)이다. 그런 후에야 서울, 부산, 광주 등지에 사는 자석(자식)들에게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마을에 들어온 장사치들에게 넘겨 돈을 사기도 한다.

개를 막는 일은 중요하다. 외부인이 공동 어장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는 이유도 되지만 정해진 날 외에 아무 때, 아무나 들어가서 남획하는 것을 막아 공동재산을 보호한다. 또한 어린 조개류는 채취를 금하고 산란기에 절대 들어가면 안된다. 구역을 나누어 번갈아 갯것을 함으로 어장의 훼손을 철처히 예방한다. 이 관리를 잘한 부녀회는 항상 돈이 많다. 반면 남자들의 어촌계는 항상 돈이 없어 부녀회에 손을 내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자들의 씀씀이가 헤퍼서가 아니라 동네 길을 닦는 등 큰 일에 남자들의 공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바다는 남자들의 영역이다. 요즘 다시마, 톳, 매생이 등의 해조류가 각광을 받지만, 예전에 바다에서는 김과 미역, 파래 등이 많이 났다. '완도에서 똥개도 지폐를 물고 다는다'는 말은 김과 미역 때문으로 보인다. 그만큼 돈이 되었다. 그러나 자금이 많이 들어갔다. 시설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갔고, 바닷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바다도 곳에 따라 해조류가 잘 되는 곳이 있다. 그래서 해마다 날을 정해 동회를 열고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초겨울에 김발이 설치되니 대개 여름이나 가을에 회의가 열린다. 목 좋은 장소가 당첨된 날, 하루 종일 기분좋게 얼큰하게 취했던 아부지가 생각난다. 겨우내 김과 미역 농사가 끝나고 김발을 처리하는 일도 모두 어촌계장의 소관업무다. 그래서일까? 바다의 경우 이장보다 어촌계장의 입김이 더 세기도 했다.

갯벌과 바다의 경우 모두 공유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합리적인 규약이자 오랜 관습이 있었다. 어느 누가 재산을 독점하고 폭리를 취하거나 남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공유하고 나누고 관리하는 것이 섬마다, 동네마다 지켜왔던 그들만의 특별한 제도이자 사상이며 시스템이었다. 공산주의였다. 민주주의였다. 이보다 아름다운 자치가 어디에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어민들이 생산한 것을 가장 비싼 값에 판매하기 위한 그들의 조직이 조합이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민들이 출자해서 조합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조합은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을 억누르고 수탈하는 기구였다. 어민들은 갈수록 가난했고 조합 임직원들만 부자가 되었다. 으레 조합장 선거 때만 되면 수십억의 현금이 봉투에 담겨 돌려졌다. 조합장 선거는 곧 돈선거로 이 땅의 선거를 망친 뿌리깊은 원흉이다. 그러니 조합장 자리는 군수보다 국회의원보다 좋은 자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요즘 조합이 어떻게 되었는가? 아조 쫄닥 망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김과 미역을 해당 조합에서만 판매하도록 했다. 수수료도 비쌌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것이 더 가격이 높았던지 생산자들은 밤에 몰래 배를 타고 육지로 빼돌렸다. 조합에서는 단속선을 두고 감시했고, 적발되면 무거운 제재를 가했다. 김과 미역을 생산하기 위해 시설비도 많이 들었다. 수백에서 수천만원까지 든다. 당연히 없이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조합에서 대출을 받았다. 그 이자가 높아 고리대업이나 매 한가지다. 결국 해마다 바다농사를 지을수록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조합만 전국 최대 규모가 되었다. 결국 야반도주해 도시의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유다.

그 아름다웠던 공동체가 급속히 붕괴되었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이 이장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오랜 역사를 가진 좋은 제도의 특별함을 이해나 할까? 그 옛날 공동 관리 방식의 바다 농사(김, 미역 )도 없어졌지만 기업화된 개인들만이 바다에서 일할 뿐으로 그들에게 과거의 방식은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갯벌, 부녀회 영역은 예전의 규약과 관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거 역시 위기에 처했다. 동네마다 광어, 전복 등 양식장들이 들어서고 거기서 나오는 오폐수로 황금 갯벌은 오염되어 더 이상 돈과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토록 소중하고 풍요로웠던 공동재산 덕분에 너도, 나도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 대학을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제법 '났던 용들'이 돌아올 '개천'은 더 이상 없다. 가끔 젊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귀농아닌 귀어를 하지만 고향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 않다. 그러니 어촌마을엔 이제 도시로 떠나지 못한 노인들만이 남아 이승을 떠날 날을 준비하고 있다. 공산주의적 방식으로 수천년을 살아온 섬과 바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의 삶의 근거를 잃었다. 모두를 위한 아름답던 그 이즘을.(2009년 6월 26일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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