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빈의 나무 이야기) 처서와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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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빈의 나무 이야기) 처서와 벌초
  • 문정빈
  • 승인 2022.08.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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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빈(문농약사 대표)
문정빈(문농약사 대표)
문정빈(문농약사 대표)

처서는 24절기의 하나로 입추와 백로의 사이에 있다. 양력으로 8월 23일 경이다. 요즈음은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잘 안 맞기는 하지만, 이 시기부터 여름의 기운이 가시고 더위가 수그러지기 시작하며 폭염과 열대야가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첫 수확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처서의 한자 뜻은 곳 처(處)와 더울 서(暑)자를 쓴다. 여기서 말하는 곳 처의 한자어는 호랑이가 자세를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본래 날렵하게 움직이던 호랑이가 멈추다는 뜻으로 확장되어 사용하고 여기에 더울 서자를 받아 더위가 멈춘다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이 시기가 지나면 사료용으로 목초를 베어 말리기 시작한다. 또 논둑의 풀도 깎아주고 산소의 벌초도 한다. 여름내 매만지던 쟁기와 호미도 깨끗이 씻어 갈무리한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처서가 오면 여름 장마에 눅눅해진 옷을 말리고 책을 말렸다.

입추가 지나도 기승을 부리던 더위가 처서 때가 되면 사그라지는 이유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자리 즉 천구상의 태양의 궤도인 태양의 황경이 150도에서 15도 사이에 있기 때문인다.

모든 식물은 생육이 정지되어 시들기 시작하며, 풀이 시들고 말라 몸이 꼬이는 모습을 표현한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는 속담은 처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됨을 알리는 말이다.

예전엔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 했고, 처서비가 내리면 '십 리에 천석이 감하고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고 했다. 그만큼 처서의 날씨는 과일이 익고 벼 이삭이 패는 시기라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결정할 정도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무르던 씨앗이 차츰 영글기 시작하므로 처서가 지나고 얼마쯤부터 슬슬 벌초가 시작된다. 풀이 생장을 멈추고 풀씨가 덜 영글었을 때 벌초하면, 풀이 더 자라지 않아 성묘 때 웃자란 풀을 만나지 않으며 영글지 못한 씨는 다음해 봄에 풀싹을 내지 못해 일거양득이다.

벌초(伐草)는 전국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으로 일부 지역에선 금초(禁草)라 부르기도 한다. 제사처럼 매우 중요한 일이라서 옛날에는 일가친척이 한날한시 집결해 성들을 공략하듯 낫 하나와 인해전술로 집안의 봉분들을 하나씩 깎아 나갔다. 예초기의 등장으로 품이 줄어 요즘은 적은 인원으로 벌초가 가능하지만, 제각기 바빠서 시간 맞추기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날짜 잡는 게 더 큰일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지역 벌초대행사들이 많이 생겨나 불효자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있어 다행이다.

매장보다 화장과 수목장이 늘어나는 현실이다. 좁은 국토를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묘소를 관리할 후손과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이다. 조상을 기리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후손의 마땅한 마음가짐이겠지만, 후손 고생으로 대우 받자는 조상은 없을 것이다. 벌초문화는 변하는 시대흐름과 핵가족화속에서 다시금 재정립되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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