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집권 여왕과 왕세자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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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집권 여왕과 왕세자의 갈등
  • 굿모닝완도
  • 승인 2022.11.1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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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명품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5"
유종필(전 관악구청장)
유종필(전 관악구청장)

엘리자베스 여왕의 최장 재위(70년 7개월) 신기록에 따라 찰스 왕세자의 최장 왕세자 신기록도 자동으로 수립되었다. 여왕의 기록이 영광이었던 반면 왕세자의 기록은 자신으로선 민망하고 짜증 나는 것이었으리라. 시즌 5에선 어머니의 장기집권을 두고 모자간의 확고한 입장 차가 노출된다. 결과적으로 찰스는 2022년 9월 여왕의 별세에 따라 영국 역사상 최고령인 73세에 찰스 3세로 즉위했다. 3세 때부터 무려 70년간 왕세자였다니 인턴 치고는 참 길고도 잔인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불륜 스캔들로 인해 격세세습론도 일었으니 이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상황에서 여왕의 속내를 어찌 아리요마는 사적으론 엄마로서 흰머리투성이인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을 터이지만, 공적으론 종신직인 여왕 자리를 지키면서 신기록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군주제 유지 발전에 도움된다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1991년 8월 <선데이 타임스>가 여론조사를 근거로 '여왕, 왕세자를 위해 퇴위해야'라는 기사를 톱으로 보도한다.

고령의 군주는 왕위에 너무 오래 있었고, 세상과 괴리가 깊어져 국민들은 여왕뿐 아니라 군주제에 지쳐버렸다. 

​기사는 또 엘리자베스 여왕에겐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이란 게 있다며 이를 비판한다. 빅토리아는 64년을 재위한 신기록 보유자. 따라서 엘리자베스가 이 기록에 도전한다는 비아냥, 즉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여왕은 정반대의 해석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한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되었으며,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제를 정립했다. 여왕은 총리에게 "나는 빅토리아 여왕과의 유사점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그 시대는 불변, 안정, 평온, 사명감으로 묘사되지 않느냐"라며 세간의 기대(?)를 일축한다. 기사에 한껏 고무되었던 찰스 왕세자는 헛물만 켠 셈.

​찰스는 조바심이 났던지 TV 심층 인터뷰를 통해 적극 공세에 나선다. "지금 군주제가 많은 난관을 뚫고 생존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작심한 듯 과감한 답변을 내놓는다.

군주제가 생존을 넘어 번영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자기 개혁이 필수적이다. 나는 개혁을 추구한다. 지금 왕실의 승패가 갈리는 분기점에 와 있다. 더욱 래디컬(radical: 근본적, 본질적, 급진적 개혁을 뜻함)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왕세자로선 할 일이 많지 않다. 

​실수를 하더라도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비전이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데 만족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사람이냐, 국민이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자신과 노쇠한 어머니를 비교하는, 터프하고도 무례한 어법이다. 그러나 여왕은 끄떡도 않고 총리와의 면담에서 왕세자의 주장을 일소에 부친다.

정치인처럼 유세나 유권자를 좇는 행위는 군주의 역할이 아니다. 왕권 자체가 4개 왕국과 다양한 인종의 영연방을 이어주는 통합의 상징이니까.

​찰스가 답답해하는 건 군주제에 정적 기능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는 살아움직이고 싶지만 거기엔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행동하려다 무위에 그치는 수가 있다.

한마디로 '아직 어려서 군주가 뭔지도 모른다'라며 자중할 것을 경고하는 뜻. 어머니와 아들 사이 안정론과 변화론, 세대차가 확연하다. 여왕이 이런 뚝심이 있으니까 최장 재위 신기록을 세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대단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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