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없는 망월동: 2005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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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망월동: 2005년 5월 18일
  • 굿모닝완도
  • 승인 2020.05.1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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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시인, 전 강진아트홀 큐레이터)

 

대통령이 온다고... 행사장 준비하느라 전야제도 취소했을까? 오늘밤 금남로는 통제됐다고... 2005년 5월 18일 일기다.

 

2005년 5월 18일, 나는 518광주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된 지 처음으로 행사에 입장할 수 있는 입장카드를 받았다. 국가보훈처에서 사전에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것은, 내가 518재단에 무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인 듯 한데, 동안, 518이 국가기념일이 된 뒤, 18일 당일 행사에 입장권이 없어서 행사에 가지 못했던 나는 표를 받자 감개무량해, 큰 맘 먹고, 까짓껏 어제 하루 재끼고(회사에 연가를 내고)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회사 대신 망월동에 가기 위해 아침 8시에 집을 나서, 8시 20분에 각화동 농산물시장 근처에 이르렀다. 그런데, 차가 꽉 막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 거였다. 아마도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여서 앞에서 경찰들이 차를 멈추고 이것저것 소지품이니, 트렁크니, 신분증이니 하는 것들을 조사하느라고 부산을 떨어 찻길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중소기업연수원 근처에 다다랐을 때, 시간은 이미 8시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애가 닳았다. 나는 주차증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 어딘가에 차를 세워두고 셔틀버스를 타고 망월묘역에 도착해야 할 터인데, 입장완료 시간이 9시 30분까지라고 입장권에 적혀 있었다. 그 시간에 그대로 가서는 시간에 맞춰 행사장에 입장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대통령이 참석해서 공식 행사를 시작할 시간은 10시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참석을 포기하고 차를 돌리고 말았다. 너무 늦게 집을 나선 게 화근이었다.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했었는데 말이다. 

참여하고자 하는 내 의지가 박약했을까? 아님 대통령이 온다니까, 당의장이니 야당 총재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경비가 삼엄한 까닭에 차가 막혔기 때문일까? 아무튼 나는 25년만에 처음으로 초대장을 받은 그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아깝다. 연가. 하루 연가면 연가보상비가 얼만데... 생전 처음으로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아본 행사 입장카드는 기념으로 잘 보관해야겠다. 엘범에 고이 끼워둬야지...   

대학 때를 생각해본다. 80년대 초반 사람들이 망월동을 잘 찾지 않았을 때, 5월 18일에는 망월묘역에 가는 일이 군사작전 같았다.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까 무논으로, 산으로, 이리저리 길을 피해 당일 10시나 11시 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곧바로 그곳으로 온 유족들 외에, 거기 도착한 사람은 겨우 3-50여명에 불과했다. 그 사람들은 그날, 그곳에 참석하기 위해 스케이트 선수처럼 물을 댄 논을 내달렸거나, 산길 가시나무에 긁히는 것은 당연했다. 잡히면, 학생들은 경찰서로 가 아무런 이유 없이 죽도록 맞았고, 유족들은 차로 화순으로, 장흥으로 데려다 버려지곤 했다. 그래도 기어코 거기 가 땀을 질질 흘리며 상기된 표정으로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한자락 내질러야 직성이 풀렸다. 

몇년 전부터 나는 매년 4월 3일 제주 4.3항쟁 추모식에 참석해왔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 행사에 참석하려면 연가를 내야 하고, 비행기값을 포함한 여비가 만만찮다. (그런 건 차치하고) 그리고 그 추모식은 광주와 너무 다르다. 그 추모식은 국가기념일이 아니래서 도청과 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비표니 주차증이니 하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러니까 도민들은 마을마다 있는 유족회 팻말을 들고 마을 사람들끼리 어울려 행사장에 참석하곤 했다. 그리고 거기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 행사의 내용들... 행사가 끝나면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주변에 둘러친 천막이나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런 518행사였으면 좋겠다.

(이후에 듣거나 가 본 제주는...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고, 제주문화재단에선가 원도심 재생사업을 했는데, 천안의 부자 화가(이분은 꽤 유명짜 하다)가 알짜 건물(일테면 옛 제주극장) 같은 곳 세곳인가를 사들이고, 또 그 근처 건물들까지 다 아도해버리고... 으짜고 저짜고... 중간간지역에 어마무시한 돌문화공원이라는 걸 만들어놓고, 거기 갤러리를 맹그라놨는데... 몇년치 전시가 밀렸다능... 김모가 제주미술관장 겸 제주비엔날레 키맨이었는데, 비엔날레는 커녕... 불명예 퇴진했다는 씁쓸한... 옛 제주병원도 좋던데, 기억원을 들여 불과 한두층을 리모델링 해 미술 뭔 공간을 맹그라놓고, 국문과 나온 이가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더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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