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긴 반성문 써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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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긴 반성문 써야 할 때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0.10.23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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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편집국장)

요즘 완도에 소감문이 화제다. 그래서 나도 써보기로 했다. 재밌다. 웃프기도 하고.

신우철 완도군수가 지역의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했다. 희극인이었던 이홍렬 씨가 여성 조연과 함께 기초단체장을 인터뷰 하면서 해당 지역의 역사, 환경 등 자랑거리를 소개하고 특산품을 시식하는 홍보 프로그램이다.

길다. 방송시간이 50분에 가찹다. 완도타워, 장보고유적지, 명사십리해수욕장 등 장소를 옮겨가며 다양한 주제로 지역을 홍보한다. 늘 그렇듯 마지막은 먹방이다. 지루하지 않게 잘 만들었다. 도중에 완도군수의 결혼 혹은 가족 이야기도 나온다. 완도군수의 그날 마지막 소감은 ‘행복한 하루’였다.

그런데 군수의 행복한 소감을 공무원들과 공유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완도군수는 간부회의 논의를 통해 ‘군수 지시사항’이란 형식으로 전체 부하들에게 숙제를 내줬다. “시청 후 소감문 제출, 상시학습 시간으로 인정하겠다”며.

공무원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이 뉴스는 공중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완도군은 급히 철회 공문을 써야했다. 지역신문의 기사에 완도군수의 뜻이 와전됐다거나 간부들의 과잉충성 또는 오버액션으로 둘러댔다. 진지한 반성 대신 지질한 핑계를 댄다.

군수는 역사, 환경 등 지역의 가치를 홍보하는 군수의 공적(公的) 활동을 공무원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고 이를 확인받아야 하며 그 결과를 글로 표현해야 한다고 명령을 내렸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의 망령이 되살아난 듯하다. 지금은 공무원이지만 조금 더 나가면 명령의 대상이 국민이 된다. 이미 우리는 그 명령 속에서 살고 있다. 집합금지 명령, 사회적 거리 유지 명령, 입도금지 명령, 발열체크 의무화, 집회금지 등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젖어있다. 이번 소감문 해프닝은 그런 배경과 연장선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시청 강요와 소감문 제출 지시는 권력에 대한 과도한 욕심,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무모한 시도와 무관치 않다. 일부 간부들의 순간적인 실책으로 보기에 이번 해프닝은 결코 간단치 않다. 없었던 일처럼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 왜냐면 재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나는 짧은 소감문을 쓴다. 가볍게. 하지만 당신들은 긴 반성문을 써야 한다. 무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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