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 공부로 시작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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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 공부로 시작하는 하루
  • 양선례
  • 승인 2020.11.2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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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학습자와 함께 하는 한글 공부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면 책상 위에 쌓인 책이 맨 먼저 눈에 띈다. 외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학교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 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손이 가는 대로 펼치므로, 읽다만 책에는 여러 곳에 노랗거나 분홍인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벽을 채운 서가에도 책이 가득하다. ‘한글문해교육’에 필요한 그림책과 진단 도구, 아이들의 읽기 이해력을 높이는 저학년과 고학년용 재미있는 동화책,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어 밤을 새는 일도 잦게 만드는 소설, 교육 서적, 아이들 놀러오면 필요하리라는 생각으로 아파트 재활용함에서 주워온 ‘Why? 시리즈’ 어린이 만화책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짧은 기획회의와 공문 결재를 마친 오전 10시 반이면 노크와 함께 민하가 들어온다. 마르고 키가 작은 1학년 아이. 2학기인데도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하여 하루에 한 시간씩 나랑 공부하는 아이이다. 어제 배운 손바닥 그림책(체계적인 한글 지도를 위하여 만들어진 그림책)을 읽는 것으로 1대 1 맞춤형 한글 공부를 시작한다. 아이는 어제 공부한 그림책을 틀린 글자가 거의 없이 술술 잘 읽는다. 오늘 배울 그림책 「놀이터에서 놀아요」를 꺼내 그림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잘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늘 그랬듯이 얼버무린다. 자석글자를 꺼내어 하나의 글자 안에 작은 소리들이 여러 개 들어있다고 설명하며 음절본체와 말미자음으로 나누어 발음해 주면 읽어 낸다. 반복되는 문장이 많아서 나머지는 쉽게 끝낸다.

아이와 이야기 나눈다. “놀이터에 놀러간 적이 있니?” 예상과는 다르게 거의 없다고 한다. 글에 나오는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을 탄 적이 있느냐고 묻자 역시 없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아 다시 물으니 그때서야 시소는 3번 쯤 혼자서 탔는데, 미끄럼틀에서는 논 적이 없다고 한다. 유치원에 여러 해 다녔는데 그랬다니 긴가민가하면서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계획 수정. 아이랑 운동장 한쪽에 있는 놀이터로 간다. “미끄럼틀을 세 번 타 보렴.” 혼자 올라갔다 내려오는 폼새가 영 재미없는 표정이다. “저 놀이기구 뭔지 알아?” 정글짐을 가리키며 물으니 모른단다. 이름을 가르쳐주고 잡기 놀이를 시작한다. 아이는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고 큰 소리를 내며 나를 잡으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부지런히 옮겨 다닌다. 열 번 이상 나와 만나는 동안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이다. 마음이 급해선지 모래장을 가로질러 내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정글짐에서 내려 모래 바닥에 발이 닿으면 지는 거야.” 그새 부슬비가 내린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놀이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정글짐에서 교장 선생님과 잡기 놀이를 했어요’를 오늘 쓸 한 문장으로 정한다. 읽기와 쓰기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서 함께 해야 그 효과가 높다. 아이는 낱낱의 자석 글자를 모아서 오늘 정한 문장을 만든다. 그동안 나는 A4 용지를 잘라 띠지를 이어 붙이고, 적당한 간격으로 칸을 만들어 준다. 아직 띄어쓰기에 대한 개념이 생기지 않는 아이를 위해 어절 단위의 띄어쓰기 칸도 만든다. 자석 글자로 문장 만들기가 끝나면 아이는 띠지에 마음에 드는 색깔의 유성매직을 골라서 다시 한 번 옮겨 적는다. 이번에는 음절 단위로 자른 띠지를 혼자서 자른 후 다시 한 문장이 되게 스케치북에 찾아서 붙인다. 하나의 문장을 여러 활동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반복 학습하는 효과가 있는 이 방법은 문해력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것이다.

간혹은 오늘처럼 이해할 수 없는 아이의 대답으로 속이 터지기도 하고, 의욕이 전혀 없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는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개별 지도를 멈출 수는 없다. 글자를 익히지 못하거나, 또래보다 많이 늦은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력의 격차가 커진다.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이 되지는 않는다는 걸 간간이 나가는 초등 동창회에서 여러 번 확인했지만 그래도 기본을 가르치는 학습은 공교육의 커다란 책무성이라는 걸 믿는다.

나는 아이들의 일 년을 책임지는 담임 교사를 25년간 쉬지 않고 했다. 담임과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거의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의 역할이 막중하다. 누구를 담임으로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의 말투, 글씨체, 생활태도도 달라진다. 수업을 따라 가지 못하는 부진 그룹의 아이들은 남겨서라도 보충학습을 시켰다. 도시의 대규모 학급이든 한 반에 10명이 채 되지 않는 농촌의 작은 학급에서든 그런 아이들은 늘 있었고, 아이가 남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학부모님을 만나면 현재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느 해 모교에 근무할 때였다. 3학년이면서 한글을 전혀 모르는 아이를 만났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때로는 호랑이로, 때로는 엄마로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아이는 3개월 만에 한글을 떼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 주었다. 교직 15년이 지났지만 문해 교육의 특별한 지도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맞춤법에 따라 몇 개의 문장을 여러 번 쓰게 하고 받아쓰기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틀린 것은 여러 번 다시 쓰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을 적용하였다. 아이는 글을 읽고 쓰는 ‘해독’은 3개월 만에 해 냈지만 그뿐이었다. 3학년 국어 교과서를 더듬거리며 읽기는 하지만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불러주는 문장을 일기에 쓸 수는 있었으나, 자신이 오늘 한 일과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정리하여 기록하지는 못했다. 분명 까막눈을 벗어났는데 왜 그러는 것인지, 이후 어떤 지도를 해야 ‘독해력’이 길러지는지 당시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등불 하나 들려준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었다.

교직 26년째가 되던 해 보성의 작은 학교에 근무하면서 선생님들과 문해력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오래 전 ○○이가 보였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까막눈을 벗겨준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 말이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고, 그 아이가 살아갈 인생에 깊숙이 관여하는 문해력 공부를 지금도 나는 하고 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가 있기에 그 일은 자못 재밌기도 하다.

세 아이 키우느라고 승진은 내게 멀고 먼 이야기였다. 회사원인 남편은 늘 나보다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왔다. 집은 평안한 휴식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서 그 평안을 위하여 다른 이가 얼마나 종종거리는지에는 눈길 주지 않았다. 생활보다는 생존에 급급한 나날. 그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청춘을 다시 준다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세월이다.

우연하게 지역 만기가 되어 가게 된 섬 근무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햇살 아래서, 포장되지 않은 맨 땅에서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좋았다. 유배지라고 해도 좋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혼자서 아이 셋과 3년을 잘 살고 나왔다. 이후의 교직 생활도 좋은 선배가 끌어 주고, 적절한 때 조언도 해 주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승진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부 교사가 아니면 가장 따기 힘들다는 벽지 점수를 얻었으므로 나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교사와 교감은 많이 달랐다. 교사는 교육자이지만 교감은 행정가에 가깝다. 내게 속한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외로웠다. 그러던 차 배우게 된 문해력 공부로 나는 아이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위해 지원하고 가르치는 일이 진정한 교육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교장실에서 같이 공부하면 안돼요?” 오후에 읽기 이해력을 공부하러 오는 4학년 아이들 셋을 따라온 같은 반 찬민이가 말한다. "진짜?" 배우려는 학생이 늘어나는 기쁨으로 초보 교장의 하루는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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