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고할매가 말했다, 내가 여순사건으로 실어증에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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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할매가 말했다, 내가 여순사건으로 실어증에 걸렸어
  • 이수정 기자
  • 승인 2020.12.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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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중, 구례가 겪은 여순사건 등, 여순 10·19사건 프로젝트 학습
말이 없는 지리산 만복대(사진 제공=구례중학교)
말이 없는 지리산 만복대(사진 제공=구례중학교)

 

전남 구례중학교(교장 장이석)는, ‘여순사건으로 실어증(失語症)이 깊어진 노고할매를 서둘러 치료합시다’라며, 제주 4·3사건과 구례가 겪은 여순 등, ‘여순 10·19사건 프로젝트 학습’을 최근에 실시했다.

배한재 교사는, “노고할매는 창조신, 수호신입니다.”라며, “손이 크고 힘이 좋아서 평평한 데 가서 줄을 쭉쭉 그으면 산이 되고 골이 되었고, 그래서 지리산과 우리나라가 생겨났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여순사건의 엄청난 충격에 창조신 ‘노고할매’는 지금도 실어증에 시달려, 말을 못하고 있어요.”라며, “한국 근현대사의 한복판에 놓인 구례가 서두르지 않으면, 노고할매는 영원히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노고할매’의 말을 되찾게 하려고, 우리는 ‘여순사건 프로젝트 학습’을 실시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노고할매가 빨리 말을 되찾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라며, “교과융합수업으로, 문학작품을 통해 본 여순 10·19사건, 한국 근현대사속의 여순 10·19사건, 냉전체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사건, 10.19사건 영상학습, 소감문 쓰기 등을 실시했습니다. 지역주민이 직접 겪은 구례의 여순 10·19사건을 들었고, 여순 10·19사건 피해자 채록 작업 등을 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제주 4·3사건은, 1947~1954년 제주도에서 남로당과 토벌대의 충돌로 3만여 주민이 학살당한 사건(다음백과). 여순 10·19사건은, 1948년 여수시에 주둔한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출동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 봉기를 일으킨 사건. 진압 과정 중, 여수, 순천, 구례, 곡성 등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지리산 노고할매가 보고 있는 가운데, 구례에서 800여 명이 희생당했다(봉성신문 2호).

학교장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지금도 말을 못할까요. 노고할매 실어증을 하루빨리 치료해야 합니다.”라며, “노고할매, 지리산의 신, 나라의 수호신으로 다시 얼른, 꼭 돌아오셔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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