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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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떠나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1.01.04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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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도 상산에서 새해를 그린다

 

그 섬에 야트막한 산 하나 우뚝 솟았다. 그 앞으로, 뒤로, 옆으로 옹기종기 섬들이 뺑둘러 앙겄다. 뽐내지도 않고 잘난 척도 안 한다. 어떤 이는 거기 가면 제주 한라산이 어쩌네 들먹인다. 운이 있으면 보이겠지. 신지도 상산 이야기다.

상산의 象은 코끼리다. 코끼리 어디를 닮아선지 잘 모르겠다. 영주암에서 꼭대기 오르는데 경사가 겁나 가파르다. 도중에 평지 하나, 쉼터 하나 없이 오르면 바로 정상이다. 최근에 만든 계단 덕분에 좀 낫다. 헐떡이며 내 나이를 돌아보기 참 좋은 코스다.

정상은 송신탑, 카메라 등이 떡하니 차지했다. 저렇게 다 보고 있으니 내 안전도 염려 없겠다. 오른쪽 쪼깨 아래 상산 표지석이 아담하게 섰다. 해발 352미터.

사방을 돌아보니 완도항, 사후도, 고금도, 조약도가 다 내 아래 있다. 남쪽으로 펼쳐진 넓은 마다가 시원하다. 내 앞에 펼쳐진 새해 같다. 장보고대교 건너 나 사는 곳도 보인다. 살 곳도 보인다. 나를 떠나니 비로소 내가 보인다.

완도타워 방향 샛길을 따라 내려가니 잔설이 남았다. 오로지 경사를 오른 탓에 오히려 한적하니 걸을 만하다. 계속 내려가자면 바닷가로 이어질 듯. 내 작은 차와 멀어지니 다시 돌아와 왔던 급경사를 내려간다.

올랐던 25분 거리가 내려가는 데는 15분이다. 다시 영주암이다. 개명해서 청해사다. 영주암 간판도 아직 그대로다. 우리 사는 세상의 정체가 수상하니 정당도, 학교도, 사람도 걸핏하면 정체를 바꾼다. 그렇게 이름을 바꾸면 팔자도 바뀐다 여기는 탓일 게다. 나도 한번 바꿔볼까?

절 아래 요사체로 보이는 집 마당 종각이 커다란 태극기로 덮였다. 불교가 이렇게도 친국가적인 종교였나? 묶여 있는 개 서너 놈이 더럽게 짖어댄다. 경내에 들어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팡이를 높이 쳐들었더니 꼬리 감추고 지레 숨는다. 놈들 덕분에 정신 번쩍 든다. 돌아온 이곳이 속계인지, 선계인지. 개놈들아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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