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애기동백축제에서 배우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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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애기동백축제에서 배우는 것들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0.01.20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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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키를 넘는 수고의 애기동백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는데, 가지에 달린 명찰에 꽃망울 수가 있다. 2175개. 누가 저걸 일일이 세었을까?

설을 앞둔 주말이라선지 오히려 찾는 이가 많진 않았다. 그래도 매표소에 연인, 가족들이 줄을 잇고 있다. 분재공원 앞으로 펼쳐진 뿌연 하늘만 아니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설명에 따르면, 여기 신안 천사섬 분재공원은 총 13 정보 부지에 분재원과 화원, 숲체험관, 온실 등을 갖추었고, 분재기념관과 저녁노을미술관도 있다. 꽃이 만개한 애기동백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놓인 숲길은 산책하기에 좋다. 애기동백이 1004만 송이라니. 붉은 꽃들 새다구로 간혹 흰꽃애기도 보인다. 돌에 새긴 시인들의 동백송(訟)을 읽어가는 것도 재미지다.

신안군은 어쩌다 애기동백에 꽂혔을까? 사람들은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단정한 홑꽃을 좋아하는데, 꽃잎이 사쿠라처럼 부서져 흩날리는 다소 지저분한 애기동백이라니 해보는 투정이다. 근데 저리 심어놓으니 이도 볼만하다.

산책길 지나 이른 분재원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제법 커다란 분재들의 사연도 하나같이 흥미롭다. 신안 섬 바닷가 절경을 훼손해가며 이리로 옮겨오지 않았기를 바랄 뿐. 분재원 옆 온실 속에는 매화 벌써 피어 향기롭다. 최병철 분재기념관의 설치도 의미 있다. 거기 영상실에 앉아 한참이나 분재 가지치기 요령을 배웠다.

조금 더 지나 저녁노을미술관 내부 벽들은 동백으로 숲을 이루었다. 숲에 들어온 기분이다. 강종열 화백이 유화물감으로 그린 붉은 꽃과 새와 나무 등이 무척 인상적(印象的)이다. 2층 우암 박용규 화백의 그림도 간단치 않다. 그가 평생 그렸던 작품 대부분을 몽땅 기증했다니. 우암이 소치, 남농의 대를 잇는 분이라는 사실도 결코 가볍지 않다.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분재원과 폭포를 다시 본다. 정원 속 작은 조산은 가짜다. 폭포도, 냇물도, 발원지도 모두 가짜다. 왜색 정원에 가까운 가짜지만 천박하지 않다. 아직 세월의 멋이 덜 들었을 뿐.

1004만 송이 애기동백나무를 돈으로 따져도 결코 만만치 않다. 앞으로 이걸 관리하자면 이 또한 엄청난 일이겠다. 개원한지 6년 됐다지만, 식재된 애기동백 상태로 봐서 동백(뿌리)과 땅(흙)이 따로다. 흙속 생물과 나무와 초본류와 조류 등 온갖 숲 식생이 생태계를 이루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섬을 나갈 때 보니 애기동백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섬, 저 섬 도로변에 자라는 애기동백 뒤로 굵은 대나무를 통째로 엮어 장식해 놓은 것이 촌스럽긴 하지만 정성은 봐줄 만했다.

어떤 마을 삼거리를 지나는데 눈에 띄는 장면 하나. 도로변에 바짝 붙은 주택 담벼락에 노부부의 얼굴이 밝게 그려졌는데 머리에 동백 화관을 이고 있다. 담장 너머 안마당에서 자라는 키큰 동백나무와 어울려 머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이 벽화가 행인들의 발길들을 붙잡는다. 지나는 차들로 도로가 위험한데도 모두가 한결같이 중앙선까지 나와 인증샷 찍기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서 흥미를 느끼나보다.

천사섬분재공원에 머무는 내내 완도수목원이 생각났다. 신안 것은 모두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수종도 오로지 애기동백뿐이다. 인공적이다. 그런데 완도 것은 수백수천 수종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난대림의 보고다. 또 자연적이다. 신안 것은 여기저기 삽질의 흔적이 가득한 아직은 날것 상태다. 반대로 완도 것은 이미 명물이지만 그래서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신안 것은 앞으로 꾸준히 정성을 기울이고 세월의 이끼가 보태진다면 명물의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멀어진 관심을 되돌리는 것이 완도 것의 숙제이다.

동백으로 유명한 곳은 여수 오동도와 강진 백련사, 고창 선운사 등이겠으나 사실 완도만 못하다. 어느 섬이랄 것도 없이 완도는 동백섬이었고 아직도 그렇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동백을 가꾸기는커녕 훼손하고 반출하기에 바빴다. 그래서 지금은 내세울만한 곳도 드물다. 완도 상가마다 어른 허리 둘레 동백 분재들이 굵은 쇠사슬로 묶인 채 붉은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겨울을 나고, 야산 동백나무는 여전히 싼값에 팔려나가고 있다.

완도군이 수년 전부터 삼두리 동백 숲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후 일은 어찌 되었는지. 청소년수련원 오르는 길 좌우로 햇빛에 반짝이던 동백 숲은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하다. 없던 것들을 모으고 정성을 들여 명물을 만들어가는 신안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있던 것이나 잘 가꾸고 보존하라는 것이다. 그게 뭣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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