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느끼는 평화·인권·정의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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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느끼는 평화·인권·정의의 외침”
  • 박정순 기자
  • 승인 2021.04.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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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학생·교직원, 제주4·3항쟁 유적지 답사 현장체험
북촌 집단학살 현장에서 아픔 공유 여순10·19 연대 다짐

 

“어떻게 우리 군이 무고한 양민을 그렇게 많이 무참하게 죽일 수가 있나요. 설명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주어야 합니까?”

여수 안산중학교 2학년 하현채 학생은 1일(목) 오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4·3민간인 학살사건 현장에서 73년 전 그날의 참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몸서리를 쳤다. 김창후 전 제주4·3연구소장의 설명을 듣던 하현채 학생은 “이곳에 오기 전 북촌리 학살 사건을 그린 소설 ‘순이삼촌’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정말 몸서리가 처진다.”고 울분을 토했다.

하현채 학생을 비롯한 안산중 학생 4명, 순천팔마중 학생 4명, 두 학교 교사 2명, 이규종 여순항행연합유족회 회장 등 전남교육청 평화·인권교육 교류단 20여 명은 이날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제주4·3 공동수업 및 현장답사에 나섰다. 이번 교류단에는 장석웅 교육감을 비롯한 전라남도교육청 관계자, 유성수 전남도의회 교육위원장과 박진권 전남도의회 여순10·19특위 위원장도 함께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전라남도교육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지난 3월 12일(금) 여수에서 맺은 평화·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에 따라 추진된 첫 번째 교류사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깊다. 두 교육청은 당시 협약에서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여순10·19 및 제주4·3을 연계해 학생 교류와 교원 연수, 공동수업 및 현장체험 등 평화·인권교육을 상호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교류단은 첫날인 1일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촌초등학교와 너분숭이, 애기무덤, 옴팡밭 등 북촌리 제주4·3유적지 일대를 돌아보며 그날의 슬픈 역사를 되새겼다. 특히, 전남 학생 8명은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우리같은 청소년들이 열심히 공부해 평화·인권이 살아 숨 쉬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다졌다.

북촌리 집단학살은 제주4·3항쟁 기간 중 일어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1949년 1월17일 하루에만 북촌리 마을 주민 1,500여 명 가운데 400여 명이 한꺼번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비극이다.

교류단은 북촌리 유적지 답사에 앞서 제주시 봉개동에 조성된 4·3평화공원을 둘러보며 제주4·3과 여수·순천10·19가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4·3평화공원 내 위령제단에서 희생 영령들에게 참배의 예를 올린 뒤 위패봉안실의 1만 4,000여 위패 앞에 머리를 숙였다. 장 교육감은 위패봉안실에 비치된 방명록에 “4·3승리의 길 10·19가 함께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학생들은 또 공원 내 4·3평화기념관에 전시된 ‘백비’ 앞에서 제주4·3이 하루빨리 그 이름을 찾아 누워 있는 백비가 일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나눴다. ‘백비(白碑)는 말 그대로 하얀 비석이라는 뜻으로, 아직도 그 이름을 정하지 못한 제주4·3의 아픔을 대변해주며 전시관에 누워 있다. 여수 만성리 해수욕장 한 켠에 세워진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 뒷면 점 여섯 개의 말줄임표(’……‘)와 함께 우리 현대사 비극의 상징물이다.

전남교육청 교류단은 위령제단 참배와 봉안실 및 전시실 답사 후 4·3평화기념관에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과 함께 평화인권교육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전남교육청 교류단은 물론 제주교육청 관계자, 4·3희생자 유족회 및 4·3평화재단 관계자 등이 참석해 제주4·3 및 여순10·19가 우리에 남긴 교훈과 과제를 공유했다.

장석웅 전남교육감은 “제주 4·3과 여순10·19는 한 뿌리이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국가를 만들려는 두 지역민들의 나라사랑과 정의의 정신이 표출된 사건.”이라며 “이제 그 본질과 정신, 교훈을 다음 세대인 학생들에게 가르쳐 미래의 희망으로 피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문 제주교육감도 “제주에서 피어난 동백꽃이 여수·순천에서 평화와 인권의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면서 “이처럼 하나 된 마음이 모아져 여순10·19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단초가 될 특별법 제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성수 전라남도의회 교육위원장은 “이번 체험학습을 통해 우리 학생들이 제주4·3과 여순10·19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고, 평화·인권 감수성을 키우기를 바란다.”면서 “전남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의 교류사업이 전국의 모범사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천 팔마중 2년 전아연 학생은 “순천의 동천을 걸으면서 여순10·19와 제주4·3의 아픔도 함께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제주의 백비와 여수의 말줄임표에 이름과 내용을 적어넣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남교육청 교류단은 방문 이틀째인 4월 2일(금)에는 제주 한림여중 도서관에서 현지 학생과 함께 4·3의 배경과 의의에 대한 공동수업을 갖고, 수업 후 ‘4·3급식’ 체험을 통해 분단에 반대하고 통일국가를 염원하던 그 날의 기억을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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