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안도에서 노란무궁화를 찾는 까닭
상태바
소안도에서 노란무궁화를 찾는 까닭
  • 박남수 기자
  • 승인 2019.11.13 2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에 소안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씨 뿌리고 키워 그곳으로 시집보낸 뒤 그 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지난 봄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 있었다. 그 앞으로 펼쳐진 해수욕장의 깨끗한 물과 시원한 바람에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 나무는 왜 소안도에서 사라졌을까?

소안도 도착해서 먼저 송내호 선생 묘소를 찾았다. 묘소 앞으로 노화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른여섯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망국의 한을 간직한 채 꽃망울처럼 뚝 떨어졌다. 일제 강점기, 소안도 사람들은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싸웠고 누구나 불온한 사람이 되어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해방을 맞이하고도 반백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명예를 되찾았다. 묘소 주위로 노란 꽃 피울 나무 하나 없음이 또 아쉬울 뿐이다.

장구의 가운데 목처럼 잘록한 곳에 소안항일운동기념공원이 있다. 둥근 돌들을 쌓아 만든 탑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뒤로 복원된 사립소안학교가 있다. 수많은 독립지사들을 키웠던 소안항일운동의 근거지였다. 기념관 안에 항일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기념관을 나오면 바다 건너로 모도가 보인다. 그 작은 섬 역시 빼앗긴 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한 싸움에서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던 큰 땅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완도군 어느 섬인들 항일의 진지 아닌 곳이 있었는가? 우리가 모르거나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다.

기념관 앞마당 넓은 터에 반가운 나무들이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며 자라고 있다. 기분 좋은 풍경이다. 소안도를 찾을 때마다 느꼈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색깔을 이제야 찾을 수 있겠다. 소안도를 다시 찾을 이유가 생겼다. 올 여름 백일장 때 우리 고금한글학교 어머니들도 이제 그 색을 볼 수 있겠다. 오래 전에 번성했을 것이나 어느새 자생지 소안도에서 사라져 버린 노란무궁화를.

그동안 소안 사람들은 사라진 노란무궁화를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원과 길가에 심은 것들은 살아남지 못했으나 복원 10년째를 맞는 월항리 바닷가 노란무궁화는 달랐다. 삼백여 미터 구간 방풍림 안쪽으로 밑동 지름이 20센티미터 넘는 나무가 많고 큰나무 아래 어린 묘목들이 수없이 자라고 있다.

무궁화 마을 월항리는 소안도의 모든 집이 그렇듯 가가호호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겨울인데도 담벼락엔 노란 꽃이 만개해 있다. 월항리 마을회관 앞 비좁은 시멘트 틈에도 노란무궁화 두 그루가 자란다. 복원에 성공한 듯 보이는 월항리 노란무궁화를 만난 건 반가운 일이지만 복원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일 듯 보인다.

자생지 소안도에서 노란무궁화가 사라졌던 이유가 뭘까? 항일의 섬 소안도에서 망국의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잃어버린 이유를 알면 다시 찾을 수 있고, 앞으로 우리의 소중한 것을 잃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안도 마을과 거리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더라도, 그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다음다음날 아침에 또 다시 여름내 무궁무진 피어날 연노랑 꽃을 그려본다. 평일도에도, 고금도에도 노란무궁화는 있다. 또 제주도에도 많다. 그러나 내가 소안도에서 유독 노란무궁화를 찾는 까닭은 그곳이 항일의 섬이었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의 노란무궁화를 복원해야 할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