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 출신 단 한 명 기억하는가?
상태바
고금도 출신 단 한 명 기억하는가?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3.05.03 2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진도 벽파. 아주 째깐한 어촌 마을. 근데 거기다 으리하게 비를 세우고 벽파정까지 세웠다. 이충무공 벽파진 전첩비. 이순신이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수군을 맡았는데 배는 고작 12척. 그때 머물렀던 곳이 벽파. 단 16일. 그후 명량에서 130여척 왜적을 물리쳤다는 것.

그 16일 체류를 기념하고 함께 싸우다 전사한 진도 출신 전우들을 기록하기 위해 성금을 모으고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에게 걸작을 쓰게 했다. 그게 1956년 일이다. 훗날 김대중도 거기다 동백을 심었다. 너무나 쉬운 역사적 사실을 그들은 그렇게 문화재로 써 가고 있었다.

열 달 무렵 머물며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던 곳, 첨으로 명과 조선 연합수군을 맹글어 주둔하던 곳, 노량에서 죽어 처음 이순신의 몸이 상륙한 곳 고금도. 그곳을 기념하기 위해 관우의 사당을 충무사로 바꾸고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다. 열 달 동안 동고동락하며 사투를 벌였던 고금도 출신 단 한 명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큰 비석 하나 있고 없고 차이가 아니라 역사를 얼마나 내 것으로 쓰고 기록하며 기념하느냐 차이다. 내가 진도를 다녀올 때마다 우리가 부끄러운 이유다. 진도 출신 전사자들 면면을 기록한 진도타워가 부러운 이유다.

2021년 5월 3일 진도 벽파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