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100년째 스승으로 모시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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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100년째 스승으로 모시는 섬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2.10.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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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요즘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섬이란 게 그리 자랑할 만한 땅은 아니었다. 사람 살 데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개 국법 어긴 죄인을 벌하던 곳도 섬이었다. 유배지, 귀양지로 부르는 고립된 공간. 왜구와 같은 해적들이 들끓을 때는 가장 먼저 포기했던 만만한 영토. 고금도, 신지도 등은 그런 곳이었다. 유배왔다가 운 좋아 풀려나 살아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거기서 삶을 마감했다. 섬에 가까운 뭍에 사람들조차 '물아래'(뭍아래)로 천대했던 곳에서 대대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에게 유배당한 죄인은 선진 문명의 전도사였을 거다.

섬 사람들은 그런 국법 어긴 죄인들에게 글을 배우고 학문을 닦았다. 완도 섬들이 비슷할 거다. 그 결과인지 몰라도 고금도에는 아직까지 다섯 사당이 있어 그런 스승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예를 올린다. 오늘 고금도 연동 영모사가 5원사 중 올해 마지막 제를 모셨다. 홍병례, 배학연, 윤세용 선생 등 세 분 위패를 모신다. 윤세용 선생은 해배되어 관직에 복귀하셨는데, 고종 임금의 시종원(비서실) 부경까지 지내셨다 한다. 윤 선생의 손자가 이번에 삼 년째 종헌관으로 참례했다.

사당은 낡아 부서지고 주변에 풀 우거져 쓸쓸하고, 어른들은 건물처럼 늙어 이 제사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른다. 완도군에서 지원되는 적은 돈으로 겨우 유지된다. 소위 잘 나가는 분들 발길은 끊어진지 오래다. 결과 보고를 위한 사진도 손 떨리는 노인들의 몫이다.

사당 이름이 영모사(永慕祠). 글 깨우쳐 주고 바른 인생 길 안내하신 '전과자 스승들'을 영원히 사모하겠다니 그 뜻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일까, 고금도 물아래 사람들은 자기 사는 섬을 서울과 진배없다는 뜻으로 반(半)서울이라 자랑했다. 이를 기억하는 이도 이제 많지 않겠지만.

2013년 10월 13일 고금도 연동 영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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