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편한 섬에 사람들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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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편한 섬에 사람들이 간다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0.10.14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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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도 순례자의 길, 신안 '섬티아고'

 

섬티아고 순례자의 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빗대 이름 붙인 신안 외딴 섬에 있는 일종의 ‘올레길’이다. 배를 타고 반시간은 가야 닿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등 세 섬에 있다. 그것도 천사대교 개통 덕분에 누리는 호사다. 철부선이 기점도 선창에 도착하자 1번 배드로의 집 옆에 펼쳐진 ‘불편한 섬’이라 쓴 현수막이 객을 맞는다.

병풍도와 세 섬은 서로 이어져 있다. 매일 두 번 걸어서 오갈 수 있다. 다리가 아닌 노둣길을 통해서. 물이 빠지면 시원하게 드러나는 갯뻘에 만든 시멘트길이다. 밀물 때면 네 섬들은 각자 고립되고 썰물 때라야 서로 이어져 하나가 된다.

민박집 아짐이 들려준 일화가 재밌다. 12사도 순례길 덕분에 유명해지자 섬 주민들이 군수에게 건의했단다. 노둣길 높이를 1미터만 높여달라고. 그러면 물이 들어도 건너갈 수 있겠다고. 군수는 “거기 섬들은 물로 막혀야 더 낫다”고 거부했단다. 올 여름 병풍도와 대기점도 사이 노둣길은 공사중이었다. 높이는 그대로, 도로 폭만 더 넓어진다. 그 노둣길로 자동차도 다니고 전기와 통신선은 물론 상수도까지 흘러가고 있다. 불편해도 흐를 것은 다 흐른다.

섬에 기독교 신자가 많긴 하지만 여기가 순례자의 길이 된 건 좀 뜬금없다. 대기점도 선창 1번집을 시작으로 해서 몇 백미터 간격으로 섬 여기저기에 교회 모양의 작은 집을 지었을 뿐이다. 마지막 12번이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의 집이다. 빠른 걸음으로 돌면 반나절이나 걸릴까. 차를 타고 돌아도 되고 자전거를 타도 된다.

그런데 그 열두 사도의 집들이 드라마 세트장처럼 아무렇게나 대충 지어지지 않았다. 저저금 집 앞에는 사도와 함께 디자인한 작가의 이름도 함께 붙었다. 작품이다. 대부분 우리 미술가들이지만 외국 작가도 있다. 예수 제자의 이름을 딴 작은 교회는 그들의 직업, 성격은 물론 역사적 평가나 현대적 해석까지 염두에 둔 듯 지어졌다.

그렇다고 그 집들이 종교적 가치관에 따라 지어진 것만은 아니다. 그 섬에서 나는 재료가 들어갔다. 낡은 항아리가 지붕에, 맷돌이 창틀에, 낡은 목선의 고물에서 빼왔을 것 같은 나무도 교회 문틀 재료로 쓰였다. 녹슨 닻의 조각이 박혀있기도 했다. 어떤 교회 지붕은 섬에서 많이 나는 양파를 닮았다. 2번 집은 세 섬에 많은 고양이를 앞세웠다. 기독교 사도의 집이지만 곳곳에 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집의 위치와 각도도 제각각이다. 다양한 크기의 창을 통해 바다를 전망할 수 있지만 어떤 집은 산기슭 무덤을 향했다. 마지막 집은 유배지 같은 외딴 섬에 두어 조금 때는 건너갈 수도 없고, 썰물 때를 기다렸다 들어가야 한다. 작은 연못 한 가운데 지어진 집은 만질 수도, 다가갈 수도 없다. 못을 따라 돌면서 관망할 수만 있다. 외벽과 지붕 유리가 반사하는 색의 변화가 다채롭다. 어떤 집은 노둣길 중간 갯뻘 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다. 그집에 이르는 오르막 길은 황금계단이다.

순례자들은 어디서나 바다와 섬과 산과 그리고 밭을 일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천일염 소금밭이 변한 새우양식장을 볼 수 있다. 폐교 화단의 이승복은 아직 살아 '공산당이 싫다'고 외친다. 어디라도 잘 포장된 도로를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자전거를 빌어 더 쉽게, 더 빨리 돌아볼 수도 있다.

신식으로 지은 게스트하우스가 딱 한 군데 있긴 하지만 숙소는 대부분 민박이다. 게스트하우스 옆에 열두 교회의 모형을 파는 선물 가게가 있는데 1번 배드로네 집이 품절이다. 가게 주인이 내려준 커피도 맛나지만 낡은 엘피판 돌려 들려주는 20세기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것도 순례길의 덤이다.

기점도, 소악도는 기독교 성지가 아니다. 예수의 열두 제자와 아무 관련도 없는 섬에 누가 왜 이런 순례길을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이 먼 섬까지 불편을 무릅쓰고 뭐하러 다녀가는 것일까? 이 순례자의 길 코스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전남도가 추진했던 ‘가고싶은 섬’ 사업에서부터 이 길은 시작된 듯 보인다. 앞으로 섬티아고 길은 여러 변화를 겪기도 하고 더러 좁아지기도 하며 어쩌면 끝날 지도 모른다. 비록 좁고 불편하더라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희망의 길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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