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에서 일어나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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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에서 일어나는 기적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3.11.16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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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이게 정말 여행인지 정의하기가 좀 애매하다.

40여 명이 야반도주라도 하듯 어두운 새벽을 뚫고 충무리를 떠났다. 분 바르고 새옷 입으니 다들 예뻤다. 고금대교를 채 건너기 전에 누군가 떴다. 여행이 시작된 거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기분이 야릇하다. 날이 밝아오면서 행인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흔들었다. 차도 흔들렸겠지. 행인들은 우리를 봤을 것이고. 서로를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은 여행일까? 어쩔 수 없는 여행일까? 이게 진짜 여행일까? ㅋㅋ

몸은 흔들리고 음악에 귓청은 찢어질 듯하고 가슴은 저절로 쿵쿵거렸다. 고창 구시포에 내렸다. 구시포해수탕이라야 별다르지 않았다. 허름했다. 절반 쯤은 탕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굳이 이런 사우나 하러 여기까지 오기엔 너무 먼 거리다. 드뎌 모두가 기다리는 식사시간. 그토록 뛰었으니 얼마나 시장할까? MSG가 들었건 말건 세상에서 젤로 맛난 식사다. 왜냐면 누군가 차려준 음식이니까. 글고 밥묵고 설거지 안 해도 좋으니까.

차는 곧장 새만금으로 향했다. 그 사이 또 춤추고 노래했다. 33킬로에 이르는 동양 최대 방조제라고 했다. 이게 어떻게 관광지인지 까닭을 모르겠다만, 버스 기사의 비유가 적절했다. 방조제 길이가 강진에서 고금도 지나 약산까지 거리라니. 새만금 지나 함평 국화축제장으로 가는 내내 뛰었고, 목포로, 다시 고금도로 오는 내내 쉬지 않고 뛰었다. 허리 꼬부라지고 무릎도 펴지 못하는 엄마도 뛰었다. 미안하지만 이거 다 불법이다. 엄마들은 물론 버스기사도 감옥 갈 일이다.

엄마들이 뛰는 이유, 알 것도 같지만 아직 잘은 모른다. 가을 추수에 매생이, 미역 발 막어놓고 당일로 놀러간거다. 구시포, 새만금, 국화축제 등 행선지만 보면 그리 매력은 없는 여행이다. 나에겐 차 안에서의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엄마들에겐 그 시간이 좋았던 모양이다. 아니 그 시간을 최대한 길게 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관건이었다. 그래서 별볼일 없는 멀디먼 구시포까지 간 거다.

이제 돌아왔으니 다시 징한 놈의 노동이다. 새봄까지 겨울의 긴 시간과 추위와 중력을 온 몸으로 버티고 참아내야 한다. 충무리 엄마들이 내게 별 재미없는, 첨부터 끝까지 불법인 여행을 간 이유, 아시는가? 안철수, 문재인과 박근혜 후보님들은 아시는가?

2012년 11월 14일 고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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