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댕기니 좋소야. 집에 가만 있어도 징합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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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댕기니 좋소야. 집에 가만 있어도 징합디다"
  • 이수정 기자
  • 승인 2022.03.02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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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초·중·고 만학도 419명 입학식
(글 사진 제공=전남도교육청)
(글 사진 제공=전남도교육청)

 

[굿모닝완도=이수정 기자] 3월 2일, 어른들이 공부하는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입학식이 있다. 신입생은 초등1단계 김현옥 외 62명, 초등2단계 정장가 외 61명, 초등3단계 김기숙 외 57명(183명)과 중학교 정백안 외 79명, 고등학교 김정례 외 155명 총419명이다.

입학생 가운데는 초등문해학력인정프로그램을 통해 초등학력을 얻어 중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은 14명이다. 입학생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가슴 속에 저마다의 못 배운 사연을 간직하고 입학식에 참석한다.

입학식은 코로나로 인해 각반별로 진행하되 A반과 B반으로 분반하여 최소한의 인원이 모여 진행된다.

중학교 입학생 가운데 특별한 사연을 가진 노부부 입학생이 있어 화제다. 정백안(79세) 서경임(74세)부부는 영암 군서면 온천에 거주하며 시장에서 생선을 팔며 공부하고 있다. 2남 1녀를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다 출가시켜 잘 살고 있어 이제는 큰 욕심 없이 공부를 소일거리로 삼아 살고 있다.

부부는 똑같이 세 살에 부모를 잃고 서럽게 살았다. 남편 정백안 씨는 영암 군서에서 세 살에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가 중매로 서경임씨를 만났다. 아내 서경임 씨는 영암 삼호에서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 이름도 호적도 없이 ‘천둥이’로 살았기에 마을에서는 ‘천둥이’라고 불렸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마을 이장님이 이름과 호적을 만들어 주셨는데 이때, 1951년 생으로 잘 못 올린 호적으로 지금껏 살고 있다. 마을 이장님이 생일과 이름을 면사무소에 올려주시고, 마을 아이들에게 하신 말씀은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얘들아, 이제 ‘천둥이’ 아니고 ‘경임’이다. 경임이라고 불러라. ”

그때는 철이 없어 이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생각할수록 고마운 분이다.

서경임 씨는 초등문해교육프로그램을 졸업하던 날 눈을 뜨게 해준 너무나 고마운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고 싶어 편지를 썼다.

운명 같은 선생님께

내 가슴에 날개를 달아 준 천사 같은 선생님.

그동안 눈뜬장님으로 살아온 세월의 아픔들을 하나하나 치료하듯

사랑으로 가르쳐 주신 덕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어

요즘 나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

선생님은 항상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지요.

초등학교 입학한지 엊그제 같은데 꿈만 같은 중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요즘 세상이 좋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동안 숨 막힌 마스크 하루 속에 한 자라도 놓칠세라

쉬는 시간 쪼개가며 입이 닳도록 가르쳐주셨던 선생님.

그동안 함께 한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배움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2022년 2월 18일 맑음 제자 서경임 올림

부부가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 초등문해프로그램에서 공부한 것은 4년 전이다. 정백안 씨는 처음에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글을 모르고서도 자식 잘 키우고 평생을 잘 살아왔는데, 이 나이에 힘들게 배워서 뭐하냐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암읍장과 해남읍장을 돌며 30여년 생선을 팔고 있는 아내가 한글공부를 하고 싶다고 학교에 가자고 졸라서 마지못해 시작했다. 아내가 “당신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 큰 소리를 쳐서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선 학교였다. 그런데 학교에 나와 공부하다보니 여간 잘 한 결정이 아니었다.

“학교댕기니 좋소야. 집이 가만 있어도 징합디다. 이렇게 댕기고 구경항게 참말 좋소.”

정백안 씨의 말이다.

영어, 수학은 한 개도 모르겠고 국어를 배워서 좋다고 하는 정백안 씨는 글을 알게 되어 더이상 바랄 것도 없다고 한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자식들이 모두 와서 중학교 입학을 축하해 줄 것인데 아이들이 못 와 아쉽다. 75세에 초등 1단계를 시작해 2단계, 3단계를 한 해씩 차근차근 공부하였는데, 3단계 초등과정을 마쳤지만 자신감이 부족해 3단계를 1년 더 공부했다. 그리고 드디어 22학년도에는 큰 결심을 하고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냈다.

코로나가 무서워 꼼짝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백신 3차까지 접종하고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니 사는 것이 즐겁다.

올해로 개교 61주년을 맞이하는 재단법인 향토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만학도 어르신들은 2022학년 3월 2일 입학을 기점으로 2년 과정의 학교생활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현재 중학교 야간반 신입생 몇 자리가 남아있다. 아직 용기가 없어 시작을 못하는 분들을 위한 올 해 마지막 기회이다.(문의 교무실 276-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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