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론드' 마릴린 먼로, 휘황찬란한 빛과 짙은 그림자 사이를 방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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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드' 마릴린 먼로, 휘황찬란한 빛과 짙은 그림자 사이를 방황하다
  • 굿모닝완도
  • 승인 2022.10.1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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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유종필(
유종필(전 관악구청장, 전 국회도서관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 서울대 철학과 졸업)

누구에게나 빛과 그림자가 있다. 양자 사이 '어떤 게 진짜 나일까'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헤맨다. 세기의 섹시 심벌 마릴린 먼로. 아버지가 원치 않는 아이로 태어난 사생아에다 정신병 엄마, 그로 인해 고아원에서 자란 노마 진. 상반된 자아로 인한 자아분열증에 시달리다 36세 꽃다운 나이 정점에서 불꽃처럼 스러져간 스타. 전형적 팩션(faction) 소설을 기반으로 한 전기 영화. 앤드류 도미닉 감독. <007 노 타임 투 다이>에 나온 쿠바 출신 아나 디 아르마스  주연.

​마릴린 먼로는 전설이다. 전설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화려한 은막(銀幕)의 우울한 이면은 주목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면에 집중한다. 보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지만 전설적 스타의 리얼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람들은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 아래 마릴린만 본다. 환호작약 열광한다. 그러나 마릴린은 만들어진, 연출된 자아일 뿐. 홀로 있을 땐 불행한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마가 본모습이다. 시사회에서 "화면에 나오는 저 여자는 내가 아니야"라는 대사가 그녀의 자아분열, 자아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중의 환호만큼이나 진한 고독감이 엄습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든 화려한 대중스타의 실제 삶은 불행한 경우가 많다. 대중스타는 대중이 원하는 모양으로 재창조되고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대량소비되고 소모되고 고갈된다. 이것이 현대 대중문화의 단면이다. 인기 절정 스타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불행은 여기에 근원이 있다. 스타도 평범한 행복을 원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영화에서 "노마는 마릴린의 노예"라는 대사는 이런 본질을 포착한 것이다.

사랑도 모질게 전개된다. 두 남자와 한 공간에서 동거하는 쓰리썸의 상태에 이어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야구는 컷 없이 이어지는 실황이고 각본도, 연출도 없다. 이런 데 익숙한 야구 영웅은 스크린 스타의 과도한 신체 노출을 금지시킨다. 그것도 자기 전공 방식, 즉 야구 방망이 폭행으로. 

​마릴린 먼로의 시그니처 컷은 영화 <7년 만의 외출> 중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뒤집어지는 흰색드레스 장면이다. 서울 지하철에도 걸렸던 이 장면의 촬영 현장에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박수갈채를 보내는 반면 남편은 "더러운 년"이라고 폭언을 퍼붓는다. 대중의 환호와 남편의 대로(大怒), 이는 대스타의 불행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나에겐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영화와 직접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이 화제의 드레스가 영화 촬영 55년 만인 2011년 경매에 나와 50억 원에 팔렸다. 본전을 뽑기 위한 세계 순회 중 우리나라에 와서 세종홀에 전시되었는데, 나도 직접 보고 살짝 손을 대본 적이 있다. 사실 별 고급품도 아니고 당시 '우스운 디자인(Silly White Dress)' 평을 받은 것인데도 스토리가 입혀지니 가치가 천정부지로 뛴 것.

​공적 성공의 산이 높아질수록 사적 고민의 골은 깊어만 가는 마릴린. 미지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정신병 엄마에 대한 연민, 낙태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이런 심리적 중압감 때문에 점차 약에 의존하게 된다. 

​세기적 스타의 죽음은 대중에게는 갑작스러운 것이었지만 스스로 서서히 죽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죽음도 영화 같았다. 어느 날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과거 표현을 빌어 말하면 '샤넬 넘버 5' 향수만 입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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