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이고 드라마틱한 결혼, 그리고 불행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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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이고 드라마틱한 결혼, 그리고 불행한 생애
  • 굿모닝완도
  • 승인 2022.10.2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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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황후 엘리자베트'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한때 유럽 대륙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왕가의 6백년 역사에서 엘리자베트만큼 화제를 뿌리고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황후는 없다. 빼어난 미모와 톡톡 튀는 개성, 극적인 결혼 과정, 여기에 비극적 죽음까지, 드라마의 단골소재로 적격이다. 한국에서도 옥주현 주연의 뮤지컬(엘리자벳)로 만들어질 정도. 그녀는 빈 시내 공원에 하얀 대리석 석상이 있고 관광 상품으로도 인기.

​독일에서 만든 19세기 중반 배경의 오스트리아 궁중 사극 6부작. 영국 왕실을 소재로 한 <더 크라운>을 연상시킨다. 결혼 초기만 다룬 것으로 보아 인기도에 따라 시즌2, 3으로 이어질지 판가름날 듯.

​<키워드1: 운명적 결혼>
바이에른(뮌헨) 공작의 딸 헬레네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의 결혼을 위한 사전 인사차 엄마를 따라 빈으로 간다. 이때 주인공이 바뀌는 역사적 소용돌이가 일어나는데... 동행하는 여동생 엘리자베트(애칭 시씨)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전개된다.

​제국의 수도 빈에 도착한 자매. 언니 헬레네는 어머니가 정해준 배필이자 이종사촌 오빠인 황제 프란츠의 아내가 될 꿈에 부풀어 얌전히 대기한다. 운명은 거짓말처럼 다가오는 법. 방으로 날아든 새를 손에 감싸고 맨발로 밖으로 나간 시씨는 아침 승마를 하던 황제와 마주친다. 야생화와 같이 생기있는 소녀의 모습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황제. 방바닥에 말광량이처럼 누워 있는 시씨의 모습을 우연히 또 보게 된 황제. 벼락을 맞은 양 머리가 멍해짐을 느낀 그는 밤중에 그녀를 불러내 샴페인을 함께 마시며 고백한다.

당신을 보고 황제가 되기 전 활기찼던 내 모습이 떠올랐어. 몇 달 간 죽은 것 같았는데 당신과 함께 있으니 갑자기 내 생일을 축하하고 싶어져. 당신은 아무도 말하지 않을 진실을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지. 내겐 당신같은 사람이 필요해.

사람끼리, 특히 청춘남녀끼리 전기가 통하는 것은 순간이다. 진한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뮤즈(muse)는 예술가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황제에게 시씨는 뮤즈였던 것. 이것은 운명인가 숙명인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서 피할 수 있다. 숙명은 뒤에서 날아오는 돌이라서 피할 수 없다.

생일 파티에서 황제는 중대 발표를 한다. 예상과 달리 세컨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시씨를 결혼 상대로 지명한다. 모두가 경악한다. 이렇게 이들 남녀는 드라마틱한 운명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남 24세, 여 17세 때의 일.

​<키워드2: 자유로운 영혼>
황후가 된 시씨는 발랄한 바이에른의 가풍과 개인적으로 타고난 자유분방한 기질을 억제하지 못한다. 보수적인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엇박자는 예정된 수순. 모든 것이 규격화된 궁중예법에 숨이 콱콱 막힌다. 꽉 쪼이는 코르세트가 시씨의 억눌린 일상을 상징한다. 왕실의 공기는 자유로운 호흡을 방해한다.

​이모이자 황제의 어머니인 조피 대공비는 정반대 성향. 깐깐한 성격에다 왕조 유지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어머니와의 마찰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늘 사고를 치는 며느리가 못마땅하기만 한 시어머니는 활어의 파닥거림 대신 박제화된 삶을 강요한다. 시씨의 타고난 반항적 성격은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 애처가이지만 마마보이인 남편은 아내보다 어머니가 우선. 고부갈등은 부부갈등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친정인 바이에른으로 돌아갈 결심까지 하는 시씨.

<키워드3: 백성에 대한 연민>
시씨는 황후지만 격식 파괴는 물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성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쓴다. 그러나 가난한 백성 구제는 인정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은 중요하다. 시씨의 백성에 대한 연민은 꾸며낸 것이 아니다. 백성들도 황후의 인간미를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오늘날까지 시씨의 인기가 높은 이유다.

​민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 여기에 공화정을 원하는 시대적 분위기까지 겹친다. 왕궁 앞에 몰려와 횃불집회를 하며 왕가에 대항하는 군중들. 시씨는 문을 열고 나가 백성들의 손을 잡는다. 왕실 규칙에 어긋난 파격에 감격하는 백성들. 황제도 따라 나와서 백성들을 대면하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다. 여운을 남긴다.

​시씨는 가정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1남 3녀를 두었지만 아들은 자살하고 장녀는 요절했다. 자녀를 낳으면 시어머니가 빼앗아가듯이 데려다 키웠다. 우울증과 신경과민으로 자주 궁전을 벗어나 해외로 나돌았다. 여행중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시씨는 미인 황후의 대명사로 통한다. 늘씬한 몸매(173cm, 47kg)와 개미 허리, 도도한 듯하면서 기품 있는 얼굴이 사진상으로도 잘 나타난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건강이 나빠졌으며 날마다 긴 머리를 손질하는 데 몇 시간을 썼다고. 시씨 역의 데브림 링나우가 실제인물에 못 미친다는 게 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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