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의 사랑과 성범죄, 그 오묘한 경계는?
상태바
권력자의 사랑과 성범죄, 그 오묘한 경계는?
  • 굿모닝완도
  • 승인 2022.10.27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법정 드라마 "아나토미 오브 스캔들"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유종필(전 서울시 관악구청장)

아나토미(anatomy)는 해부학을 말한다. 스캔들을 해부학적으로, 다시 말하면 팩트에 입각하여 살펴본다는 뜻의 제목. 영국 하원 의원 겸 내각 장관의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한 법정 드라마이자 관계자들의 심리 흐름을 보여주는 심리 스릴러. 현실의 여러 사건을 조합하여 엮은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했기에 현실감이 있다. 6부작 내내 탄탄한 짜임새와 긴장감이 유지되며 마지막 반전이 관객의 허를 찌른다. 

​총리와 옥스퍼드 동아리 절친이기도 한 유망 정치인 제임스. 캠퍼스 커플 아내와 초등생 아들딸. 가정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의원실에 근무하는 새내기 여직원 올리비아. 케임브리지 출신의 재원. 이들 남녀의 엘리베이터 안 섹스를 두고 '사랑이냐 강간이냐'의 치열한 법정 대결. 팩트와 팩트, 논리와 논리가 쟁쟁(錚錚)하게 맞부딪치는 재판에 온 나라가 들썩인다. 둘 사이 '권력의 불균형 관계'는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과연 한국의 유사 사건과 유사한 결론이 나올까? 내내 궁금증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스캔들에 휘말린 장관을 정리하라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총리는 끄떡 않는다. 옥스퍼드에서 상류층 자녀들끼리 모여 온갖 해괴한 장난질을 일삼던 동아리 절친이자 과거 어둠의 공유자이기 때문.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집안 배경에 학벌, 외모까지 짱짱한 0.1% 상류층의 기득권적 행태에 대한 비판 논조가 드라마 내내 흐른다.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 진행된다. 주인공 부부와 총리, 게다가 담당 검사까지 학창 시절부터 얽히고설킨 인연의 실타래는 스토리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외견상 남부럽지 않게 잘나가서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부류들의 이면은 결코 향기롭지 않은 게 영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특권의 자유는 있지만 강간의 자유는 없다." 여성 검사의 말은 이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특권이든 특혜든 법 테두리 안에서 노는 것까지야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법의 울타리를 한 발짝만 벗어나 봐라. 정의의 이름으로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결기가 느껴진다.

검사와 변호인의 날카롭고 딴딴하고 깔끔한 질문, 피해자(호소인)와 피고인의 간결한 답변이 재판의 품질을 높인다. 흔히 한국 법정 드라마에서 부각되는 감성적 요소는 없다. 

더욱이 배심원 재판인데도 형용사, 부사를 최대한 배제하고 명사, 동사로 이어지는 간결한 문답은 서구 선진사회의 성숙한 단면을 보여준다.

유력 정치인으로서 도덕성은 이미 '개에게나 줘버린' 제임스는 정치생명은 물론 인생 자체가 걸린 문제에 냉철하고 당당한 자세. 팩트에 충실할 뿐 과도한 자기주장은 하지 않는다. 서구 상류층 엘리트의 힘이랄까 무서운 일면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순간에도 법적 싸움에서만은 남편을 지키는 데 협조하는 엘리트 출신 아내 소피. 남편을 지킨다기보다 가정을, 자녀들을 지키는 것은 한국의 아내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남편에게 쏘아대는 다음 대사는 극적 반전의 암시를 주면서 드라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당신에겐 진실이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야. 생략하고 누락하고 숨기면서 맘대로 가지고 놀고...

총리와 피고 제임스는 철없던 학창 시절 심상찮은 사건의 연루자임이 드러난다. 알고 보면 여검사 케이트 역시 제임스와 심각한 악연이 있고, 자신과 관련한 행위에 비추어 이 사건의 진실을 일찌감치 꿰뚫고 있었던 인물. 과연 배심원들의 평결은 어떻게 나올까? 이후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신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입증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