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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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눈
  • 굿모닝완도
  • 승인 2022.12.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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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빈(문농약사 대표)

 

요즘 아침저녁 기온이 영하권을 넘나들고 있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봄에는 새로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푸른 잎과 가지를 뻗고, 가을에는 낙엽을 물들이는 식물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겨울을 난다. 일 년 동안 꽃도 피우고 잎도 피웠다가 겨울이면 씨앗만 남기는 식물도 있고, 비교적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땅 속에 뿌리나 줄기를 파묻어 안전하게 겨울을 견디는 식물도 있다. 하지만 나무는 줄기와 가지가 모두 땅 위로 노출된 상태에서 겨울의 추위를 오롯이 견뎌야 한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는 줄기의 수분을 줄이고, 껍질의 밀도를 높이는 등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나무는 잎이 떨어진 자리와 줄기나 가지 끝에 내년을 책임질 겨울눈〔越冬芽〕을 만든다. ​겨울눈이란 이렇게 겨울을 대비해 나무가 만들어놓은 식물의 눈 부분을 말한다. 겨울을 맞아 잎이 모두 떨어진 마른 나무의 가지 끝을 자세히 관찰하면 봉오리 같은 모양으로 작게 눈이 돋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겨울눈은 잎눈과 꽃눈 두 가지가 있고, 잎눈은 잎의 압축된 정보를, 꽃눈은 꽃의 압축된 정보를 갖고 있는 작은 생명체이다.

​​겨울눈은 나무가 이듬해 봄을 위해 만든 것이다. 나무는 이 겨울눈을 추위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 목련은 겨울눈의 껍질에 털외투를 입히고 동백나무는 여러 개의 단단한 비늘로 겨울눈을 싸고 있다. 해송은 송진으로 추위와 바람이 들어올 틈을 막는다. 이 꽃눈을 추위에 얼지 않도록 겨우내 잘 지켜야만 봄에 커다란 꽃을 만들 수 있다. 작고 어린나무들도 가을에 미리 다음 해 봄을 준비해 놓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부터 준비한다.
가지의 제일 끝에 달린 눈을 정아(頂芽)라고 하는데, 이는 줄기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억제한다. 만일 이 정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나무는 성장을 계속하다가 얼어 죽는다. 나무도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야 한다. 광합성 에너지를 계속 만들어내면 추운 겨울을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내를 동반해야 하는 겨울잠은 동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나뭇가지 끝에 달린 눈을 자세히 보면 눈의 크기와 위치가 제각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뭇가지 하나의 끝이 향하는 곳도 서로 다르다. 가지 끝에 달린 눈 가운데 제일 큰 눈이 향하는 곳이 내년에 나무의 줄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다. 지난 여름 동안 빛에 반응한 결과다. 그래서 낙엽수들의 수형은 공간을 찾아 뻗어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침엽수들은 줄기가 곧고 그 방향이 일정하다. 곰솔을 보면, 줄기 끝에 끈끈한 점액에 둘러 쌓인 길고 흰 겨울눈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줄기를 뻗어 꽃을 밀어 올릴 듯 힘찬 기세가 느껴진다. 침엽수들은 정아가 이끄는 대로 생장한다. 그래서 삼나무,편백나무 메타세쿼이아 등의 수형이 길쭉하고 멋있는 삼각형의 수형을 자랑한다.

겨울눈은 나무들의 생존전략이다. 겨울 나무는 모든 잎새의 무게를 내려 놓는다. 봄, 여름의 신록과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에 만족하지 않고 겨울눈을 만들며 준비했기에 봄이 되면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다. 겨울눈에는 인내와 함께 희망이 들어있다. 겨울눈이 없다면 나무는 새 봄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울눈은 겨울의 악조건에서도 생명을 내걸고 싸운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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