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장흥 유치有恥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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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장흥 유치有恥의 슬픔
  • 굿모닝완도
  • 승인 2023.03.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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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선(장흥 유치 거주)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글 사진 제공=문충선 님)

 

사람이 구분 지은 계절은 경계가 모호해서 마침내 울림을 주는 시詩와 같습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봄을 끓는 물에 슬쩍 데쳐 된장에 무친 머구대(머위)의 향기로 맞이합니다. 지천으로 솟아난 머구대 위에는 노란 생강나무꽃이 피어나니 봄입니다. 지독한 가뭄에 어제 오늘 봄비가 내리면서 남도의 들녘이 조금은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유치면 국사봉 아래 한치마을 깡말랐던 계곡물도 흐르고 있습니다.

내 고향 유치는 지금 수많은 깃발과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고향땅 수장하고 그나마 남은 땅 공동묘지 웬말이요 우리는 반대하요."(유치초등학교 51회 동창회)

2023년 3월 현재 장흥댐 저수량은 최대저수량 191백만㎥의 29.7%인 56.7백만㎥에 불과합니다(물정보포털 3월 21일). 수몰된 옛 유치중학교 옆 주암마을의 배바위(200톤 규모의 고인돌)와 철거하지 않은 광주 가는 옛 아스팔트길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장흥댐 저수지 아래 낮게 흐르던 옛 강물도 말라가고 있습니다. 기위위기로 가뭄과 폭우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수만 그루 나무가 잘려나가면 우리가 먹을 물이 점점 고갈될게 뻔합니다.

유치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불바다가 되어 생존의 터를 다 잃었습니다. 그 잔혹한 폐허와 슬픔을 딛고 터전을 일으켜 세운 유치사람들은 2000년 장흥댐으로 물바다가 된 고향에서 다시 쫓겨났습니다.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인 비수몰지역은 장흥댐의 중요한 상수원입니다. 유치 산속에 언제부턴가 태양광이 들어서며 수많은 나무들이 잘려나갔고, 이제 18만평 대규모 공동묘지까지 들어선다는 소문이 흉흉합니다.

장흥댐 상수원은 전남 서남부 10개 시군(장흥, 목포, 강진, 영암, 해남, 무안, 완도, 진도, 신안, 함평)에 생활용수를 대고 있습니다. 숲과 나무들은 가뭄과 홍수를 조율하는 거의 유일하고 탁월한 사람의 벗입니다. 유치의 울창한 숲을 자꾸만 민둥산으로 만든다면 우리가 먹을 물은 천천히 고갈되고 말 것입니다. 물을 쉽게 많이 사용하는 대규모 아파트가 여러 군에 지어지며 치명적인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의 흐름으로만 보아도 대도시와 농촌의 수탈 관계는 이미 적나라한데, 작은 군에서도 이른바 중심 읍과 여러 면의 관계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집 건너 편 대나무 숲은 가뭄에 시달리는지 온통 샛노랗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은, 세상은 나눔으로 가득합니다. 지난 해 집을 지어 살았던 말벌들이 겨우내 떠나고 난 뒤 그 집을 딱새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집 앞 늙은 감나무의 광경입니다.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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