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에 가위 찬 서부의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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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에 가위 찬 서부의 엄마들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3.11.21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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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어려서 마을에 유자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유자는 시젯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귀한 물건이었다. 시어서 먹지도 못할 그 과일을 제사가 끝난 뒤에 아부지가 가지고 올 행운을 모든 아이들이 기대했다. 인기 캡짱이었다. 그 뒤 고금도는 유자천국이 되었다. 밭이라고 생긴 곳에는 모두 유자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대단한 부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다. 한 두 군데에 정부 자금 받아 유자청 만드는 시설이 들어서기도 했다.

그러던 고금도 유자도 점점 사양길로 접어들었는지 뽑아내고 잘라냈다. 하기사 유자농사도 손이 많이 가는데 시골에 남은 노인들이 그 일을 감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은 유자밭도 대부분 외지 업자들이 계약재배를 한다. 아마 유자의 브랜드화에 성공한 고흥 사람들이 유자를 가져다 유자차를 만들어 판다고 들었다. 요즘 같은 유자 수확기가 되면 동네 노인들은 일당을 받고 '알바'를 한다.

요즘 다시 유자가 제값을 받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고금도는 매년 하던 월송축제를 유자축제로 바꿨다. 충무공을 버리고 유자를 선택한 셈이다. 가을이라 노란 유자향에 고금도가 뒤덮여도, 아직 익지도 않는 9~10월에 유자축제를 해도, 유자값이 폭등을 해도 즐거워할 고금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나라에서 심으라고 하면 심었고 뽑으라고 하면 뽑았을 뿐인데도 그리 큰 재미를 보질 못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도 국가를 믿지 않는다.

생과일 유자를 파는 것보다 유자차를 담아 파는 것이 큰 수익을 낸다. 그러자면 자체 조합을 만들고 공장시설을 갖추고 상표를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방정부가 할 일이었다. 맛 좋은 유자차를 만들도록 기술을 지원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농협이 생유자를 생산자로부터 헐값에 구입해 외지상인들에게 비싸게 파는 것이 전부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챙기는 식이다.

고금도 청학리 체험마을에 엄마들 손놀임이 바쁘다. 두꺼운 옷에, 두꺼운 장갑에, 두꺼운 모자를 썼다. 유자 가시에 찔리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전정가위 하나씩 들고 세발 사다리에 올라 유자를 딴다. 고금도 엄마들로 알았는데 서부에서 왔단다. 멀리서도 왔다. 총 대신 가위를 찬 '서부의 엄마들'이다. 화개리, 화흥리, 대구미 엄마들이다. 수가 많아 들고간 유자막걸리가 부족하겠다. 날씨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2011년 11월 19일 고금도 청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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