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그녀가 목장갑을 낀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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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그녀가 목장갑을 낀 사연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4.01.24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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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앗따 콱 손꾸락을 짱커불 수도 없고...”

그리스 사람 조르바가 생각났다. 그는 그릇을 굽다가 손가락이 자꾸 걸리자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나이 팔십이어도 우리 순희 엄마는 아직 짱짱하다. 밭으로, 바다로, 공장으로 일 다닌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죽으먼 썩어질 몸둥이. 놀면 뭐해? 몸노실 쪼까 하면 돈 나온디...”

그런 그녀가 한글 공부에 재미붙였다. 한조금 지나면 그만둘 줄 알았다. 냉한 말투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달라졌다. 교실 맨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수업 끝나면 교사보다 먼침 달려나간다. 일하러.

호미 잡던 손으로 테블릿을 터치하고 그리고 쓰자니 두툼한 다른 손꾸락이 닿아서 매번 액정이 엉망이 된다. 다른 엄마들도 첨에 다 겪은 일이지만 이 엄마는 유독 적응이 어렵다.

검지 손꾸락 하나를 잘라낸 비닐 장갑을 끼보더니 땀 찬다며 벗어분다. 그래서 힉한 목장갑을 저라고 줬더니 인자 좋단다. 어제 내내 한 번도 안 틀렸다.

수업 끝에 손꾸락 하나 없는 목장갑을 가방에 곱게 넣는다. 학용품이다. 순희 엄마가 교실에서 목장갑을 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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