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도 충무사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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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충무사 유감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4.02.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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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완도=박남수 기자] 고금도 묘당도 충무사는 임진왜란(정유재란) 관련 이충무공 유적지다. 정유재란 당시 마지막 수군 본영이었던 고금도에서 명나라 수군과 조선 수군이 연합군을 이루어 왜군과 맞섰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였던 1598년,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현 충무사가 있는 묘당도에 관왕묘를 세우고 승전을 기원했고, 이곳을 떠난 이순신 장군은 남해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주검이 되어 이곳으로 돌아왔다. 충무사의 유래다.

전쟁 끝난 뒤 고금도 사람들은 관왕묘에 관우와 진린, 이순신 장군 등의 신위를 모시고 해마다 제를 모셨다. 지금도 그리 한다. 해방 후 충무사로 이름을 바꾸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정유재란 당시 가리포진(현재 완도) 첨사였던 이영남 장군을 모신다. 지난 1960년 국가사적 114호로 지정되었다. 해마다 이른 봄(4월 28일) 충무공 탄신제와 겨울(음력 11월 19일) 충무공 순국제 등 두 번의 제사를 올린다.

묘당도 충무사에는 두 점의 관련 유물이 있다. 전쟁 후 100여 년이 흐른 숙종 때(1703년) 세워진 관왕묘비가 그것이다. 관왕묘비에는 관왕묘가 세워진 역사적 유래와 이순신 장군과 진린 장군 인연과 관계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충무사가 소장하고 있는 다른 유물 하나는 충무공이 직접 만들고 사용했다는 해전에서 진법을 그린 작은 수첩 형식의 우수영전진도첩이다. 신지도에서 발견되어 충무사로 옮겨왔다 전하는 우수영전진도에는 필사자와 필사연도가 적혀있다. 단기 4284년(단기 1951년) 신묘년 3월에 학산 장지철 선생(당시 86세)에 의해 필사되었다. 필사 시기로 봐서 그리 오래 된 것은 아니지만 희귀한 유물이다. 지난 1988년 3월 전라남도 문화재 163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아산 현충사 유물관에 전시된 전진도첩은 이곳 고금도 충무사 소장 우수영전진도첩의 모사본이다.

그런데 이처럼 귀한 유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그리 진지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유물관은커녕 방습, 방충, 온도유지 시설도 갖추지 못한 채 점차 본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충무사 전진도첩의 효과적인 보존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관왕묘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비석 하단부 눈비 노출로 부식이 심각한 상태다. 글자들이 훼손될 상황이다.

이번 설 연휴를 맞아 고금도, 조약도를 찾은 귀성객들이 아이들 데리고 충무사를 찾았다. 학창 시절 그들이 소풍 다녀 간 곳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다시 이 곳을 찾을 텐데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지... 낡고 오래 된 것들에 대한 관심은 하염없이 멀어지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관심은 날로 지대하다. 청산도 완도군수 흉상이 그런데, 고금도에 세우려는 충무공 동상을 위한 모금은 지지부진하다. 전신상은커녕 흉상도 어렵겠다. 어느 세월에 시멘트상이라도 세워질 지 걱정이다. 안타깝다.

2014년 2월 1일 갑오년 설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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