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 신지도에서 서화를 넘어 시대를 그리다
상태바
원교 이광사, 신지도에서 서화를 넘어 시대를 그리다
  • 굿모닝완도
  • 승인 2024.03.29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철(전남도의회 경제관광문화위원장, 조선대 행정학 박사)
이철(전남도 경제관광문화위원장)
이철(전남도 경제관광문화위원장)

조선 후기, 문인이자 서화가로 시문(詩文)과 서화(書畵)에 모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원교 이광사, 그의 삶과 예술은 단순한 서예가의 이야기를 넘어 한 시대의 아픔과 예술혼이 어우러진 역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원교 이광사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해 나갔던 인물이다.

1755년, 그의 나이 50세에 소론 일파의 역모사건(나주괘서사건)에 연좌되어 종신유배형을 받았다. 그는 함경북도 부령에서 7년의 유배 생활을 하던 중, 문인에게 글과 글씨를 가르쳐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전라남도 완도에 있는 신지도로 이배되어 유배 생활을 15년간 더 하다가 유배지인 완도 신지도에서 생을 마쳤다.

이광사는 사색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절해고도인 신지도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서도를 추구하며, 서예의 기본적인 필법에 대한 이론과 평론을 겸한 이론서인 「서결(書缺)」과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나타내는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하였다.

서법의 비결이라는 뜻으로 필결이라고도 하는 「동국진체」의 이론서인 「서결」은 조선 서예사의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현재 대한민국 보물 제1969호로 지정되었다.

특히 「동국진체」는 서법의 모든 틀을 깨고 우리 민족 고유의 리듬과 멋, 감성이 담긴 조선 고유의 서체로 민족 주체적 서예 개혁 운동이자 유성·독창성·주체성을 지닌 조선 서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18세기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한껏 드러냈던 시기로 ‘진경시대(眞景時代)’라고 할 만큼 문화의 비약적 발전을 이룬 시기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조선 고유의 문화가 성립·발전되었으며, 이러한 우리 문화에 대한 자존감과 우수성이 「동국진체」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광사의 독특하고 웅혼한 필체는 현재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침계루(枕溪樓)·천불전(千佛殿)·해탈문(解脫門), 강진 백련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만경루(萬景樓), 구례 천은사의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부안 내소사의 대웅전(大雄殿), 고창 선운사의 천왕문(天王門) 등에 수많은 편액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이광사가 신지도에서 생을 마감한지 14년이 지난 후,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 되었고, 다산의 작은형 손암 정약전도 신지도에서 8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 다산이 신지도에 유배 생활을 하던 손암에게 보낸 ‘탐진 풍속 노래(탐진촌요)’라는 시에는 “옛날에 글씨방이 신지도에 열려 있어 아전들 모두 이광사에게 배웠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이광사의 글씨가 서남해안 일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아전들에게도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완도 신지도는 섬으로 귀양보내는 절도정배지 7곳 중 한 곳으로 조선시대에 가장 거리가 먼 3000리 유배지로 이용된 ‘유배의 섬’이다. 이름난 이들만 보면 장암 정호·다산의 형인 정약전·윤행임·이세보·지석영 등이 신지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다.

또한 신지도는 유배 온 인물들이 백척간두에 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창작의 꽃을 피워낸 ‘예술의 섬’이다.

신지도에서는 2019년부터 서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원교 이광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전국 서예인이 참여하는 ‘원교 이광사 서맥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앞으로도 원교 이광사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학술 연구와 다양한 사업을 통해 위상을 재정립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가치를 재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신지도에 유배 온 주요 인물들에 대한 유물과 자료를 정리한 유배 문학관을 건립해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주변 관광자원과 연계한 문화체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외딴섬 신지도에서 15년의 세월 동안 글씨 한 획 한 획에 자신을 담아내며 예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그의 삶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