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치유의 적들] '치유의 섬' 가는 자동차전용 다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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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치유의 적들] '치유의 섬' 가는 자동차전용 다리들
  • 박남수 기자
  • 승인 2024.01.2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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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굿모닝완도 발행인)

‘한국의 나폴리’를 표방하는 강진 마량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가 있다. 가수 김현진의 노래 ‘마량에 가고싶다’는 한 종편 프로그램에서 임영웅이 불러 더 유명해졌다. 2절 가사는 이렇다. “너와 내가 만나서 사랑을 노래한 마량의 고금대교...” 노랫말로만 보면 고금대교는 '마량의 소유'임에 틀림없다. 마량 사람들이 고금도와 고금대교까지도 자신들의 관광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노래 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소문에 따르면, 고금대교 마량쪽 야간조명 설치와 전기요금을 마량이 부담하고 있다고도 한다. 최신 관광 트렌드에서 ‘다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전국의 여러 사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남도 지정 '가고싶은 섬' 1호인 가우도의 출렁다리가 강진 관광의 판도를 바꾸었다. 

마량에서 약 10킬로미터 북쪽으로 올라가면 가우도가 있다. 강진군은 지난 2012년 가우도 양쪽으로 인도교를 세우고 출렁다리로 명명했다. 그 다리가 신의 한 수가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 다리는 강진 관광의 판도를 바꾸었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가우도 한 해 방문자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도 들린다.

강진군만 그런 건 아니다. 전국 지자체 어디를 가든 ‘다리 마케팅’ 경쟁이 치열하다. 강진군은 섬 8개 중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를 최고 명소로 띄웠고 전남도는 '가고싶은 섬'으로 지정했다. 그 명소로 들어가는 다리가 바로 출렁다리다. 신우철 군수가 알려준 덕에 우리 완도는 265개 섬을 자랑한다. 그런데 강진의 가우도, 출렁다리와 같은 섬과 다리가 우리에게 단 하나라도 있는가?

완도 다리 중 한때 전국에 유명해진 다리가 있다. 지난 2022년 5월 신지 송곡 앞바다에서 일가족이 사망했을 때, 그들의 이동경로였던 고금대교와 장보고대교가 연일 TV에 보도됐던 적이 있다. 그때를 제외하면 ‘완도’ 하면 떠오르는 다리는 딱히 없다. 더구나 완도의 다리들은 어느 것이나 걸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오로지 자동차로 건널 수 있도록 건설되고 관리되는 자동차 전용 다리다. 이는 걷는 다리가 관광의 대세인 요즘 트렌드와는 정반대다. 섬으로의 진입 시점부터 최고 강점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해양치유를 통한 관광 완도를 위해서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완도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다리이지만 완도대교는 자동차 전용 다리이다. 걸을 수 없도록 구조적으로 설계되었다. 

군외면 달도와 완도 원동을 잇는 완도대교는 완도를 대표하지만 다리 그 자체로 관광을 위한 목적과 기능은 전혀 없다. 다리 양쪽으로 넓은 보행 공간이 있지만 모양뿐이다. 보행자가 거기에 접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자동차를 주정차할 공간은 없다. 보행로는 다리 점검과 보수를 위한 시설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라도 완도대교를 걸을 수 없다. 걸어선 안 된다. 

완도와 신지 사이에 놓인 신지대교 역시 완도대교와 사정은 마찬가지다. 완도 쪽에서 다리를 향해 갓길로 걸어서 접근하자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다리까지 왔어도 보행로는 한쪽에만 있어서 무단횡단을 감행해야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더라도 마찬가지. 길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리 건너 신지대교휴게소 주차장에 주차한 후 다리를 걸어보려면 다시 반대편 보행로까지 무단횡단을 각오해야 한다. 방법은 딱 하나 있다. 신지 방면에서 출발해 다리를 건넌 후 완도방향 주차장에 내린 뒤 역방향으로 농공단지를 보면서 걸으면 된다. 나날이 변해가는 완도항을 정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곤 신지 강독 수협 주유소가 최적이다. 신지대교 역시 걸어서는 안 되는 무섭고 위험한 다리다.
 

고금도 상정리에서 본 장보고대교와 신지 상산 모습. 다리 양쪽에 주차장이 있지만 주민과 관광객들이 걸어서 이동하기 불편한 다리다. 

불편하기는 장보고대교도 매일반이다. 장보고대교의 보행로는 동쪽 한 곳에 있다. 따라서 장보고가 활약했던 서쪽 방향 장도와 완도항 그리고 황도, 송도 등을 다리를 걸으며 구경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지 방면 주차장에 주차하고 걷기 위해서는 무단횡단을 감수하거나 멀리 송곡 횡단보도까지 돌아서 접근해야 한다. 신지 쪽에서 자동차로 다리를 건넌 후 고금도 방면 주차장에 차를 두고 역방향으로 걷으면 된다. 간혹 다리 위에서 멋진 노을이라도 보려면 비좁은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무단횡단 후 사진을 찍어야 한다. 결국 장보고대교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장도와 장보고동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장보고대교는 자동차 전용 다리가 맞다. 보행로는 그냥 '폼'이다. 
 

강진 마량과 고금도를 연결한 고금대교 역시 걸어서 접근하기에 위험할 뿐만 아니라 양쪽 어디에도 주차 시설이 없다.  
고금도와 조약도를 잇는 약산대교의 장흥 쪽 뒤편에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지만 저 다리에는 주차시설이 없고 걸어서 접근하기엔 위험하다. 다리 아래 왼쪽 마을이 정유재단 때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던 덕동 고금도진이다. 통제영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강진 마량과 고금도를 연결한 고금대교는 다리 양쪽으로 보행로가 있지만 이또한 제 역할을 못한다. 이 다리에 이르는 어느 쪽에도 주차장이나 보행로(인도)가 없다. 굳이 가려면 위험하게 차를 불법 주차하거나 갓길을 걸어 다리까지 멀리 가야한다. 고금도와 조약도를 잇는 약산대교도 사정은 같다. 비록 좁게라도 양쪽 보행로가 있지만 다리 어느 쪽에도 주차공간이 없다. 그런데 양쪽에 팔각정은 번듯하게 세워져 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위에서 언급한 완도대교, 신지대교, 장보고대교, 고금대교, 약산대교 외에도 보길대교, 소랑대교, 소안(구도)대교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구조적으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자동차 전용 다리들로 설계되었고 건설되었다. 최근에 보길도 예송리와 예작도를 연결한 보행 전용 다리 예작교가 개통된 건 반가운 일이다. 또 완도 장좌리 마을과 장보고유적지인 장도를 잇는 목교가 있긴 하지만 보행로 표면을 자세히 보면 낡은 방부목 재질 소재가 부식돼 지속적으로 공해를 유발하고 있음도 지적된다. 

‘건강의 섬’ 대신 ‘치유의 섬’을 표방하고 해양치유산업에 올인한 완도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완도를 찾는 1,000만 관광객들에게 치유의 섬으로 가는 다리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대도시를 떠나 해양치유센터에 이르는 동안 차창 밖으로 섬 경관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차에서 내려 여유롭게 걸으며 장보고와 이순신이 누볐던 푸른 바다를 맘껏 호흡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사정이라면 서울의 한강 다리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겨우 주민 30명이 사는 강진 가우도를 한 해 100만 명이 찾도록 한 비결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4차선 자동차 전용 다리가 아니라 두 사람이 겨우 왕래할 수 있는 좁은 보행 전용 다리 때문이다. 덕분에 강진은 골프장, 리조트, 주변 땅값 상승, 마량 관광벨트 연결 등의 놀라운 성과를 얻었고, 강진군은 이를 근거로 강진에서 마량에 이르는 국도의 4차선 확장을 구상 중이다.  이 모든 것이 출렁다리(지금은 청자다리, 다산다리로 개명) 하나에서 시작된 변화들이다. 

지금까지 완도의 다리들은 하나같이 걸을 수 없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관리되고 있다. 자동차 전용 다리뿐이다. 언제까지 '후진 다리'로 방치할 참인가? 이러고도 해양치유 1,000만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건가? 더 늦기 전에 다리 구조와 주변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단지 차로 빠르게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걸으며 생각하는 다리, 머물러 바라보는 다리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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